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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니 Jun 03. 2021

게을러진 자취생의 아픈 식물들

웬일로 잘 키우나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태생이 게으른 사람이다. 자취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어가다 보니 본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끔 하루정도 청소기 돌리는 것을 거르기도 하고 설거지를 하룻밤 쌓아놓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청소했던 화장실을 더러운 곳만 물로 씻어내고 나중에 대청소를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뒹굴거렸다.


자연스럽게 식물들에 대한 관심도 점점 거두었다. 기계적으로 물만 챙겨줬는데 그 주기가 점점 길어졌다. 그래도 키우기 쉬운 식물과 조금 까다로운 식물을 섞어서 산 덕분일까, 자취집은 여전히 푸르렀다. 그래서 아픈 식물이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푸르렀기 때문에...




처음 아프기 시작한 식물은 레몬나무였다. 겨울이 막 지나간 때부터였을까? 레몬나무 잎이 끈적거렸다. 해충이 생겼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저 과즙이 떨어지면 끈적거리는 것처럼 잎도 그러는 줄 알았다. 가끔 행주로 끈적거리는 곳을 훔쳐주는 정도로 관리를 했다. 그런데 날이 점점 더 따뜻해지고 이윽고 5월 말이 되자 끈적임이 심해져서 주변 바닥까지 끈적거렸다. 조금 이상해서 인터넷을 찾아봤다. 깍지벌레라는 해충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나무가 크면서 나무껍질이 거칠어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안경을 쓰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뭇결이 아니고 다닥다닥 붙어있던 깍지벌레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당장 레몬나무를 내다 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유칼립투스는 개복치 같이 예민한 식물이지만 비염에 좋다고 해서 들여왔다. 뿌리부터 외목대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외목대처럼 보이고 싶어서 가지를 쳤더니 갑자기 키가 엄청 커버렸다. 목대가 나무처럼 튼튼해지기도 전에 키만 훌쩍 큰 것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커져있을 정도로 쑥쑥 자라났다. 아주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 심겨있었기 때문에 키에 맞게 화분을 새로 구입해 엄마한테 분갈이를 부탁드렸다. 분갈이 후 물을 주고 한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다. 나중에 봤더니 성장이 멈추어 있었다. 게다가 새로 난 잎들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살 생각이 없었는데 작은 잎사귀가 귀여워서 들고 온 트리안은 물이 부족해서 탈모가 오기 시작했다. 다른 식물들과 비슷하게 1-2주 주기로 흙이 말랐는지 확인하고 물을 줬다. 가운데가 점점 비어갔다. 다른 식물들처럼 자라나면서 오래된 잎이 탈락하는 현상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물 주는 것을 깜빡했고 탈모는 심해졌다. 인스타에서 우연히 본 트리안은 뿌리부터 풍성했다. 뭔가 잘못 키우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댓글을 달았더니 2-3일에 한 번씩 물을 주고 계시단다. 살릴 방법은 오직 삭발뿐이란다. 줄기를 모두 잘라내고 자주 물을 주면 2-3주 만에 다시 풍성해진 트리안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결국 트리안은 날을 잡아서 삭발을 시키고 이전보다 자주 물을 주고 있다. 유칼립투스는 지켜보는 중이다. 회생 가능성이 있는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레몬나무의 해충도 어느 날 저녁에 한 시간 동안 털어내고 소독약을 뿌려줬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깍지벌레는 이번 주말에 모조리 잡아볼 참이다.


나의 게으름이 식물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다시 한번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내 몸을 회복하고 휴식을 취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지금은 그 수준을 뛰어넘었다. 주말에 하루 종일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넘나들며 새롭게 볼 게 없나 찾아다녔다. 먹을 때 빼고는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미 브런치에 한 차례 자기반성을 올렸으나 전혀 나아진 것이 없는, 아니 오히려 퇴보한 나는 전혀 사랑스럽지 않았다. 아무리 게을러졌어도 식물들에게서 그리고 나에게서 아예 관심을 거두면 안 되는 것이었다.


올해가 이제 반 밖에 남지 않았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고 곧 팬데믹 기간이 끝나게 되면 그 기간 동안 시간을 잘 활용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확연하게 갈릴 것이 당연하다. 자취를 시작한 것이 무의미하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게으름과 싸워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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