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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May 23. 2024

방어 上

기억의 단상 2020년 11월호

 

 코로나로 인해 매년 가을 모슬포에서 열리던 방어 축제가 취소되었다. 축제가 취소되어 갈 곳을 잃은 방어들을 이마트에서 사들인 덕분에 오랜만에 저렴한 가격으로 싱싱한 방어회를 맛볼 수 있었다. 480g에 만 사 천 원. 일주일간만 진행하는 행사여서 미리 이마트 앱에서 픽업 신청을 해놓지 않으면 사기가 어렵다고 해서, 평일에 미리 앱으로 픽업 신청을 해놓고 토요일 점심 무렵에 졸린 눈을 비비며 방어를 찾으러 갔다.     

 

 귀여운 물고기 모양의 플라스틱 용기에 한가득 담겨진 방어가 내 손에 도착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비닐이 없어서 용기를 그대로 들고 가야 하는 게 흠이었지만, 만 사 천 원에 이 정도 혜자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어딘가. 혹여나 방어가 햇빛을 보면 싱싱함이 달아나버릴까 두려워서 픽업 용지로 플라스틱 용기를 감싸고 조심조심 안고서 집을 향해 걸었다. 집에 도착해 먹을 만큼 그릇에 옮겨 담고 초장을 간장 종지에 듬뿍 짰다.   

   

 종지를 빨갛게 물들여가는 초장처럼, 내 입안에는 군침이 가득 고였다. 빠르게 짜기를 마치고 방어를 한 점 집어 초장 종지에 담뿍 찍고 입안에 넣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아, 역시 방어는 찬바람이 불 때 먹어야 제 맛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자 식곤증이 스르르 몰려왔다. 이것저것 할 게 많지만, 다행히도 오늘은 답사나 기타 스케줄이 있는 날은 아니어서 조금은 느슨하게 흘러가도 될 것 같았다. 피로로 딱딱하게 굳은 어깨를 위해서라도 쉼이 필요할 것 같아 잠시 낮잠을 자기로 했다. 주말에도 항상 바쁘게만 보내서 낮잠을 자본 게 억 만년 전이었던지라, 이불 속에 들어가자마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바로 눈이 감겼다.   

   

*     


 꿈을 꾸었다. 꿈에서 하늘이 오빠와 레이 오빠와 만나 홍대에서 방어를 먹었다. 순간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헷갈렸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같이 홍대에서 방어를 먹었던 적이 있으니까. 현실에서도 긴 웨이팅 후에 가게에 입장해서 방어를 먹었는데, 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꿈이니까 웨이팅을 좀 제껴 주면 좋으련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한참을 기다려 먹은 방어는 꿈에서도 꿀맛이었고, 우리는 눈이 항상 녹지 않고 쌓여있는 한라산 소주병을 사이에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두 오빠를 번갈아 바라보며, 우리가 처음 마주했던 겨울의 제주를 떠올렸다.      


 겨울의 제주, 바닷가 앞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장기투숙을 하던 나는 취미 삼아 썰물 무렵이면 바다에 들어가 게를 자주 잡곤 했다. 너무 작지도, 그렇다고 크지도 않은 게 들을 잡아 해감을 하고 기름에 튀겨내면 꽃게랑 과자의 식감이 났다. 안주거리가 떨어졌을 때 처음 게를 잡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친해지고 싶은 게스트들의 발목을 자르는 용도(연박을 시킨다는 의미로 ‘발목을 자른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로 게 잡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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