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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May 03. 2024

그곳을 떠난 사람들 : 수지 씨의 이야기

3부 인터뷰 1


* 해당 인터뷰에 나온 이름 수지는 가명입니다. 인터뷰이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표기했습니다.     



 수지 씨는 그곳에서 2년을 일했다. 처음 물류센터를 알게 된 건 사촌 동생 때문이었다. 사촌 동생이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주말이나 쉬는 날에 자격증을 공부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본인에게 유익할 것 같아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게 바로 물류센터 아르바이트였다. 그 당시에는 수지 씨가 다니던 물류센터가 전국적으로 막 생기기 시작할 시점이었고, 수지 씨는 이미 하고 있던 일이 있었기에 사촌 동생의 말을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넘겼다.     


 시간이 흐르고 난 후, 수지 씨는 동네에 물류센터의 통근 버스가 많이 지나다니는 걸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걸 보고 호기심이 생긴 수지 씨는 ‘나도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으로 통근 버스 노선을 검색해 봤는데, 집과 가까운 곳에 통근 버스가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게 수지 씨의 물류센터 입성의 시작이었다.   

  

 호기심으로 물류센터에 발을 내디뎠는데, 타이밍이 좋게도 입사 프로모션에 추가 인센티브가 생겼다. 수지 씨가 처음 일용직으로 물류센터에 갔을 당시만 해도, 입사 프로모션 인센티브는 200만 원이었는데 그게 두 배로 뛰어서 400만 원이 된 것이다.      


 그걸 보고 수지 씨는 머리도 식힐 겸 물류센터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입사 프로모션의 추가 인센티브는 오래 진행되지 않았고 일주일 정도만 진행되었는데, 특이하게도 이 추가 인센티브를 일용직 모두에게 알리지 않았고 랜덤으로 일부에게만 문자 메시지로 소식을 보냈다. 수지 씨는 운이 좋게도 그 문자 메시지를 받았고, 추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자 메시지를 받지 못한 사람은 수지 씨와 같은 기간에 입사를 했지만 400만 원의 인센티브가 아닌 원래의 인센티브 200만 원만 받을 수 있었다. 추가 인센티브 400만 원은 한 번에 지급되는 게 아닌, 3달에 걸쳐서 지급이 이루어졌다. 인센티브 비용만 받고 바로 일을 그만두는 걸 방지하기 위한 사측의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던 셈이다.      


 입사 프로모션에는 또 하나의 인센티브 제도가 있었는데, 추천인 제도였다. 새로 입사하는 사람이 기존에 센터에 다니던 사람을 추천인으로 하면 추천인 수당을 받게 되는데, 추천인 수당을 받으려면 그것 또한 몇 달은 일해야 했다. 추가 인센티브와 추천인 수당 때문에 수지 씨는 1년만 일해보자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를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     


 일용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입사하게 된 후, 수지 씨는 출고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입사 당시에 입고로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채용팀에 건네봤지만 입고는 남은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갈 수 없어서 자연스럽게 출고로 배정받게 되었다.     


 일하던 초반에는 난이도가 어렵지는 않았다. 보통 처음에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면 집품 위주의 간단한 업무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지 씨에게는 집과 가까운 곳에서 통근 버스를 타고 내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통근 버스를 탑승하는 곳과 거리가 먼 사람들은 일부러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와서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반해, 수지 씨는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물류센터에서 겪는 여름과 겨울은 혹독했다. 여름에는 너무 더웠고, 겨울에는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물류센터의 사계절을 회고하며 수지 씨는 말했다.     


“선선해서 봄, 가을이 제일 일하기 좋았어요. 여름과 겨울이 가장 힘들었고요.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녹초가 돼서 퇴근을 하게 되니까 더 고된 느낌이 강했어요.”     


 수지 씨는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분류 업무’를 꼽았다. 분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말하는 수지 씨의 목소리에서 고단함이 묻어났다.     


“분류 업무를 하는데, 분류테이블에 산처럼 상품이 쌓이는 걸 보는데 그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해도 해도 끝이 없었어요. 오토백 라인에서 나오는 물건 만으로도 너무 많아서 끝이 없는 상황에서, 싱글 작업대에서 포장한 상품들도 계속 카트에 토트 9개씩 실어서 분류장으로 오는 거 에요. 그 카트가 한 두 대가 아니고, 5대 이상 줄줄이 서있는 걸 보며 아득했었어요. ‘이 물량들을 오늘 다 쳐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었죠.”


*     


 수지 씨는 물류센터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들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생각난다고 했다.     


“물류센터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일을 하다 보면 여러 캐릭터들을 볼 수가 있어요. 친한 사람에게만 가벼운 상품을 포장하라고 가져다준다거나 그런 일들이 흔치 않게 있어요. 그 와중에도 친한 것과 상관없이 공정하게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몇몇 관리자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사람들이 기억에 남아요.”     


 수지 씨에게 얼마 전 언론에 대서특필된 블랙리스트에 대해 물었더니,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수지 씨는 블랙리스트가 있을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만약에 있다고 하더라도, 상품을 도난하거나 센터에 피해를 끼친 극 소수의 몇몇만 있을 줄 알았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블랙리스트 명단에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는 너무 비인간적이고, 그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 그 정도로 큰 사건사고를 일으키거나 피해를 준 게 맞는지 블랙리스트를 만든 회사 측 외에도 당사자의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     


 수지 씨는 그곳에서 2년을 일했지만, 결국 재계약이 되지 않아서 물류센터를 그만둬야 했다. 수지 씨는 물류센터가 개선해야 할 가장 큰 부분으로 ‘휴식 시간의 보장’을 들었다. 2시간에 10분 정도는 최소한 쉴 수 있는 시간이 공식적으로 주어져야, 덥거나 추운 날씨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컨디션을 조금이나마 조절해 가며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수지 씨는 아직도 물류센터에 남아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건강’을 잘 챙길 것을 당부했다. 열악한 작업 환경임에도,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만 본인의 컨디션보다 더 무리해서 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열악한 작업 환경 때문에 일을 하다 보면 예민해지는 순간들도 있는데, 서로 잘 다독여주면서 따뜻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혼자서 그런 환경을 만드는 건 힘들지만, 함께 노력한다면 가능할 테니까.     


 수지 씨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서 보낸 2년 간이 제 인생의 한 페이지와도 같은 시간들인데, 너무 매몰돼서 죽어라 일만 한 게 아닌가 싶어서 그 부분이 아쉬워요. 조금 더 심적 여유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었다면, 좋은 기억이 더 많이 남았을 거 에요.”     


 수지 씨의 말대로 심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상태에서 일을 한다면, 일의 효율도 높아지고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비록 지금 수지 씨는 그곳을 떠났지만, 남아 있는 노동자들은 수지 씨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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