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상 2020년 12월호
한때 주말 메이트라 불리는 세 명과 주말마다 만나 전국을 돌아다녔다. 우리가 가장 많은 빈도로 방문한 도시는 경주였는데, 그곳에 주말메이트 중 한 명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핑계로 가곤 했다.
우리는 해가 지면 경주에 사는 주말 메이트의 집에서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술을 마셨고, 해가 떠 있는 낮에는 경주의 명소들을 다니곤 했다. 불국사, 첨성대, 수많은 왕릉들, 안압지, 보문호수, 교촌마을 등등 경주 곳곳을 정복하듯이 다 가보았다.
언제는 주말 메이트의 집 근처에 위치한 시장에서 야시장도 열려서 야시장을 가기도 했다. 야시장 내에서 술을 먹기에는 너무 정신이 산만해서, 안주거리를 사 와 주말 메이트의 집에서 술을 마셨다.
경주 맛집 투어도 꽤나 많이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를 한 곳 고르라면 단연 명동쫄면이다. 명동쫄면의 시그니처인 유부쫄면은 양이 작아 한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하는 나로 하여금 언제나 그릇을 다 비우게 만드는 마법 같은 매력이 있었다.
주말 메이트들과 함께 먹을 때도 맛있었지만, 혼자 먹을 때도 맛있었다. 문득 그 맛이 그리워질 때 나는 즉흥적으로 버스를 타고 경주에 가 유부쫄면을 먹고, 산책 겸 능들을 거닐고 진주로 돌아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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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대한 많은 기억이 있지만, 가장 선명히 떠오르는 건 봄의 불국사에서 본 겹벚꽃이었다. 당시 나는 분홍머리였는데, 내 머리색보다 더 짙은 불국사의 분홍 겹벚꽃은 절경 그 자체였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었다.
불국사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야트막한 언덕으로 올라가면 벚꽃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벚꽃나무 군락지는 불국사 경내가 아닌 외부여서 그런지 유원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벚꽃나무를 간지럽히면, 벚꽃나무는 분홍빛 눈을 지상에 흩뿌렸다. 벚꽃 나무 밑에는 겹벚꽃을 보러 온 많은 관광객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벚꽃나무를 구경하고 있었고, 우리도 그중 하나였다.
아름답게 휘날리는 벚꽃 잎을 바라보며 우리는 가방에 넣어온 캔맥주를 하나씩 꺼내 마셨다. 캔맥주는 미지근한 상태였지만, 아름다운 풍경 아래에서 마셔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하고 달콤하게 느껴졌다.
캔맥주를 마시는 그 순간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사람들과 더 많은 주말을 함께 하고 싶다고. 꿈결을 거닐 듯 몽환적인 봄의 한 페이지를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꽃놀이를 함께한 소중한 나의 주말 메이트들. 지역은 전부 다르지만, 매주 주말마다 모였던 우리의 깊은 우정이 그날의 불국사 겹벚꽃처럼 변치 않고 앞으로도 피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주말 밤, 그들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