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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년기의 스포츠 만화들

기억의 단상 2023년 2월호

by 석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왔다. 극장판으로 만나는 <슬램덩크>기에 보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기대감을 잔뜩 안고 보았는데, 역시나 너무 좋았다. 명불허전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슬램덩크>를 보고 극장을 빠져 나와 그동안 나를 달구었던 스포츠 만화들을 떠올렸다. 농구에 대한 사랑을 심어준 <슬램덩크>를 비롯해서 테니스를 해보고 싶게 만들었던 <테니스의 왕자>, 배구에 대한 열정을 심어준 <하이큐>, 결은 조금 다르지만 <고스트 바둑왕>까지.


<고스트 바둑왕>을 보았을 때 나는 바둑에 매료되어서 휴대용 바둑판을 사서 학교에 들고 다녔다. 당시 나는 바둑 기사를 꿈꾸었다. 금방 그 꿈을 접긴 했지만.


우리 반에는 나처럼 <고스트 바둑왕>에 빠졌던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 휴대용 바둑판으로 매일 오목을 두었다. 바둑을 두려고 샀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있어서 바둑은 너무 많은 두뇌회전을 필요로 했기에 결국 바둑 기사가 되는 걸 포기했다.


만약 나에게 만화처럼 천재기사의 영혼이 들어와 바둑을 둘 때마다 묘수를 알려준다면 바둑 기사가 될 수 있었을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슬램덩크>는 농구라는 종목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었다. 키가 작았던 나는 농구공을 자주 튕기며 드리블 연습을 했지만, 이번에도 현실은 달랐다.


나는 <슬램덩크>속에서 키가 작아도 농구를 잘하는 송태섭 같은 캐릭터가 아니었기에 농구 선수가 될 수 없었다. 슬픈 일이었다.


<테니스의 왕자>를 보았을 때는 더 이상 선수를 꿈꾸지 않았는데, 대신 차선책으로 코스프레 동아리에 들어갔다. 겉모습이라도 <테니스의 왕자>의 주인공인 료마가 되고 싶었으니까.


내가 들어간 코스프레 동아리에는 <테니스의 왕자>에 매료된 사람들이 꽤 많았고, 테즈카라는 안경을 쓴 주장 캐릭터를 닮은 선배도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매일 “테즈카 선배.”라고 불렀다.


테즈카 선배의 원래 이름이 무엇인지는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의 모습만큼은 선명하다.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테니스의 왕자>속 세이슌 학원 유니폼을 입은 모습은 정말 테즈카와 딱 닮았으니까.


<하이큐>는 20대에 접하게 된 작품이었던지라 선수를 꿈꾸지도 않았고, 코스프레를 하지도 않았다. 대신 자극을 받았다. 연재를 거듭하며 성장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을 보며, 비록 다른 분야지만 나도 계속 성장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포츠 만화는 경기 장면을 제외하고는 사실 밋밋하다. 너무 뻔한 클리셰 범벅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만한 요소는 너무 많다.


만화 속 캐릭터들이 지닌 열정을 비롯해 시간을 지나며 성장해나가는 모습들은 언제나 뜨거운 감동을 준다. 좋아하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이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이것이야말로 스포츠 만화를 보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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