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wood Canyon Nature Park,
Lampe, MO
오후 1시. 나는 트레일을 막 걷기 시작했다. 딸아이와 남편과 함께, 7월의 따가운 햇살 아래 호기롭게도. 이 무모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2020년 3월 어느 날, 미국에 와서 적응하기도 바빴던 우리 가족의 일상을 코로나19가 모래시계 돌리듯 휘익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많은 곳이 차단되고 문을 닫았다. 많은 것이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대면 접촉이 끊겼다. 우리는 식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에 가는 것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내게 되었다.
집안 구석으로 굴러다니는 먼지덩어리 같은 우리를 형체가 있는 존재로 만들어줄 뭔가가 필요했다. 동네 트레일 걷기는 그래서 시작되었다. 3개월 남짓, 시간이 되는대로 우리는 제법 많이 걸었고, 걷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이제 좀 더 멀리 가볼까, 하여 정한 곳이 미주리 주와 알칸소 주 경계에 있는 독우드 캐년이었다.
한국의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도 아니고 평지 포장길을 걷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의 자만감이 부른 한가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커져 있었다. 독우드 캐년에 와서도 입장권을 끊은 후 기념품샵을 여유롭게 구경하면서 패치와 키링 쇼핑에 진지함을 더 했다. 그리하여 트레일 출발시간 오후 1시. 바야흐로 해는 중천에 떠있고 최선을 다해 강렬한 광선을 쏘아대고 있었다.
공원 지도를 펼쳐 보았다. 알칸소 경계지점까지 2.9마일(대략 4.6km)이었다. 알칸소로 넘어가면 엘크와 바이슨 무리를 볼 수 있다고 했으나 우리는 ‘소박하게’ 알칸소 주 간판까지 가보기로 했다. 트리하우스를 시작으로 트레일 곳곳에 스프링이며 폭포며 볼거리가 풍성해서 지루하지 않겠다 싶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닭살이 돋을 정도로 에어컨이 열심히 일하는 기념품샵 안에서 지도를 보았던 우리의 생각이었다.
공원 안은 푸르름으로 반짝였다. 나무들은 처음부터 하나인 듯 사이좋게 어울려 초록빛을 발하고, 오묘한 에메랄드색의 스프링은 경쾌하게 흘러갔다. 햇살은 컵케이크 휘핑크림 위에 뿌려진 스프링클처럼, 나뭇잎 위에도 샘물 위에도 트레일 위에도 흩뿌려져 빛이 났다. 나무그늘이 드리워진 오솔길을 따라가다 작은 다리 위를 지나갈 땐 샘물이 흘러가며 뿜어대는 냉기에 시원하기까지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계절이 여름이었었는데, 만나는 미국인마다 여름을 제일 좋아한다 해서 의아해했었는데, 이곳 캐년에서 나는 처음으로 자연의 황홀한 여름빛에 반하게 되었다.
걷기 시작한 지 30분이 채 지났을까. 딸아이의 웃음기가 급격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트레일이 넓어지고 나무그늘은 사라지고 시원하게 흘러가던 샘물도 멀어졌다. 무방비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따가웠고, 기온이 높은 만큼 습도가 그에 질세라 높았다. 그제야 잊고 있었던 사실이 생각났다. 미주리의 여름은 한국의 그것과 아주 닮아 있음을. (건조한 콜로라도에서 온 나의 미국인 친구는 미주리의 습도에 질색팔색을 했다.) 우리 셋은 신속하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온몸의 땀구멍이 다 열린 것 같았다. 주변의 습기를 다 빨아들이는 물 먹는 하마처럼.
창이 넓은 핑크 모자도 손선풍기도 7살 아이에게 달라붙은 꿉꿉한 열기를 내려주지 못했다. 분홍 복숭아에서 붉은 사과로 얼굴빛이 변하던 딸아이가 먼저 포기를 선언했다. 남편과 나는 습도가 질주하는 더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회의를 할 겨를도 없이 걷지 않으려는 아이를 먼저 감당해야 했다.
더위에 더욱 단호해진 그녀와 함께, 우리는 물걸레 짜듯 끈기를 짜내며 계속 걸었다. 얼음물을 수시로 마시게 하고 주변에 싱그러운 자연환경으로 관심을 환기시키고 급기야 어부바까지 해주면서. 이런 종류의 끈적한 인내는 뜨거운 불에 조청을 은근히 졸여내듯 끝이 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시간이었으나 사실은 폭신한 단 맛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반가워 탄성을 질렀다. 알칸소의 시작을 나타내는 나무 간판이 보였기 때문에. 우리 셋은 비로소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고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은 홍시처럼 발갛게 익었고 땀으로 머리를 감은 듯 젖은 머리카락이 우스꽝스럽게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렇게 홍시 셋은 뜨거운 볼을 서로 맞대고 우주에서 가장 환한 미소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걸어서 미주리를 넘어선다는 건, 탄산수처럼 톡 쏘는 느낌이었다. 남한보다 더 큰 면적을 가진 미주리의 끝, 경계선 그 어느 지점에 내가 서 있다는 게 왠지 모르게 짜릿했다. 지도에서만 보던 미주리 경계를 내가 직접 밟고 서 있으니 미국에 와서 먼지처럼 느껴지던 내 자신이 드디어 실체를 가지게 된 것 같았다. 평면 종이에서 튀어나와 나만의 부피와 형체를 가지고 마침내 입체적으로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미국에서
나의 실존을,
땡볕 아래
몇 시간을 걷고 걸어
미주리 끝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작렬하는 여름 태양 속에서 5.8마일(약 9.3km)을 걸었다. 돌아올 때 들리자고 했던 트레일 옆 작은 카페는 영업을 끝냈고 공원은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햇살은 오늘의 할 일을 다 한 듯 나긋해졌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연은 여전히 우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