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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의 바다 Aug 13. 2024

마음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Katy Trail State Park,
Rocheport, MO


봄이 기나긴 잠에서 깨어났다. 기지개를 쫙 켜고 한해 준비를 바지런히 시작하고 있었다. 꽃망울을 틔우고 새싹을 돋아내면서. 봄에게 올해는 어떤 시간이 될까. 우리도 겨우내 웅크린 몸을 쫙 펴고자 집을 나섰다. 우리 가족에게 2020년의 봄은 어떤 기억이 될까.






케이티 트레일은 미주리 강을 따라 나무젓가락 같이 쭉 곧은 직선으로 펼쳐져 있었다. 단단하고 평평한 트레일 표면은 은은한 회색의 자잘한 돌들이 깔려있어서 발 밑에서 까끌거렸다. 무리 지어서 혹은 혼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보였고, 우리처럼 가족 단위로 산책 온 사람들도 있었다.


미주리강을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I-70 국도를 달리며 먼발치에서 몇 번 보았을 뿐이었다. 강은 푸르면서 흙빛깔이 났다. 물은 맑은데 강바닥의 모래 때문에 황토색이 보이는 것이라고 어디선가 들었다. 강물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이 방대했으나 요란스럽지 않았다. 사찰에 가서 이따금 들려오는 바람소리, 풍경소리처럼, 트레일에서 본 미주리강은 나를 고요하게 했다.





케이티 트레일은 원래 1870년에 개통한 MKT(Missouri - Kansas - Texas) 철도였고 미주리에서 캔자스를 거쳐 텍사스를 연결하며 그 당시 원주민 구역인 오클라호마를 처음으로 지나가는 통로였다. 1980년대부터 트레일화 작업이 진행되어 미국에서 제일 긴 철도 트레일이 되었다. 케이티 철도의 역사를 240마일(390km) 위에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보는 미주리강과 주변 풍경은 어땠을까. 강물 위로 무수히 부서지는 햇빛 조각들은 말없이 반짝거렸다. 100년이 넘게 자연의 정적을 깨우며 분주하게 달리던 기차의 기적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고, 자연은 다시 적막함 속에 머물고 있었다.



Katy는 MKT의 별명이었다



길의 구조 상 오고 가는 사람들이 한눈에 보였다. 옆으로 빠지는 길이 없으므로. 저 멀리서 보이는 점들은 얼마 뒤에 내 눈앞에 사람으로 나타날 예정이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가까워졌을 때,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으며 “Hi.”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이든 세 사람이든 모두에게 따로따로. 유치원생인 나의 딸처럼 어린아이들은 안되었지만 초등 저학년 정도면 어른과 같이 인사 소통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모르는 사람과 우연히 눈 마주친 적은 많았다. 그 순간 황급히 서로 눈길을 돌리기 바빴을 뿐, 미소 짓는다거나 인사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낯선 사람이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눈을 마주쳐 미소 지을 일도 인사할 일도 없는 길거리 군중 속에서 서로 무관심한 채로 지나가는 게 안심이 되는 세상 속에 나는 살았었다. 하물며 식당에서 대면 주문조차 불편해하는 나란 사람이 어느 순간에 오늘 같은 날, 아무렇지 않은 듯 모르는 사람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처음엔 어색했다. 평소에 얼마나 미소에 인색했는지 깨달을 만큼 연이어 미소 짓는 내가 낯설었다. 앞에서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게 보이는데 어느 순간에 눈을 마주쳐야 할지 몰라서 녹슨 로봇처럼 삐걱거렸다. 그들도 우리도 가족과 얘길 하거나 강을 보거나 시선이 자유로운데 마주 보는 시점이 대체 언제가 적당하단 말인가. 누군가가 가까워질 즈음 인사할 타이밍을 잡기 위해 우리의 눈길은 갈 곳을 찾아 그렇게 부산해졌다. 그런데도, 가까이 다가왔다 싶을 때 바라보면 그들은 이미 우리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우리는 매번 그렇게 늦었고 그들은 우리의 눈길을 매번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태양처럼 환한 인사를 거듭하면서 타이밍을 맞춰 나갔다. 트레일을 걷다 보니 인사를 한 건지, 인사를 하려고 트레일을 걸은 건지 헷갈릴 만큼 정다움이 켜켜이 쌓였다. 주차장으로 돌아올 때쯤 우리는, 놀이공원의 퍼레이드 댄서들처럼 인사가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찜기에서 막 꺼낸 호빵같이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미국에 온 지 세 달, 코로나로 셧다운 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봄은 왔으나 우리의 마음은 겨울에 멈춰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전 세계를 마비시켰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 누구도 예측불가능한 시기에 낯선 곳에서 소수 외국인으로 산다는 게 무서워졌고 위축되었었다.


유리창으로 비쳐든 봄날 햇살을 따라 용기를 내서 집을 나섰던 오늘 아침, 미주리강을 보았고 강처럼 길고 긴 트레일을 걸었다.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과 미소를 나눴다. 마음이 꽁꽁 얼었던 우리는 마치 김이 모락 거리는 뽀얗고 몽글한 순두부 한 그릇을 대접받은 듯 여러 감정이 뒤엉켜 뭉글거렸다.


잘 모르겠다. 남편과 내가 감동한 이유가, 마주친 사람들의 순수하게 눈부신 미소 때문인지, 우리에게서 처음 발견한 이런 종류의 말랑한 다정함 때문인지. 아니면 타인을 향해 미소를 주고받은 모두의 상냥한 마음 때문인지. 정직한 봄 햇살이 마냥 눈부셔서인지. 미주리강이 엄마의 사랑처럼 한없이 넓고 깊어서인지. 구불거리는 내 마음을 다림질로 반듯하게 펴듯 트레일이 정갈하게  펼쳐져있어서인지. 새로운 세상으로 깨쳐 나온, 강변에 막 돋아난 연둣빛 새싹의 애씀이 오늘의 나 같아서인지.






비로소 우리는 봄을 맞이하며 살아갈 힘을 냈고 봄맞이 집안 대청소를 한 듯 개운해졌다. 마음속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거미줄과 먼지덩어리도 말끔히 털어냈다. 이제부터 좋은 일이 생길 거야, 하며 마무리로 마당을 쓸어내고 대문에 ‘입춘대길’을 붙이는 마음이 되었다.


오늘 마주친 사람들에게도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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