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nett Spring State Park,
Lebanon, MO
온통 일렁이는 풀빛이었다. 봄에 태어난 새싹들은 줄기를 뻗으며 훌쩍 자라나 있었다. 마음이 시큰거렸다. 언제 아기였냐는 듯 키가 커서 내 옆구리에 와닿는 나의 딸 같아서. 반짝이는 생명력으로 성장하는 나뭇잎처럼 그 아래 샘물도 같은 빛깔로 넘실거렸다.
미국 남북전쟁 시기, 피터 베넷(Peter Bennett)이란 사람이 하루 평균 1억 갤런의 물이 샘솟는 이곳에 제분소를 지었다. 베넷 제분소는 성공적이었고, 베넷 스프링은 그의 성을 따라 자연스럽게 붙어진 이름이었다. 1900년을 5년 앞둔 어느 날, 제분소는 불에 타서 사라졌다. 그 후 125년이 지난 오늘, 불꽃에서 살아남은 이름으로 이곳은 여전히 베넷이었다.
샘물은 용암이 분출하듯 격정적으로 솟아 나오는 것 같았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냉기는 낮은 폭포를 만들며 더 강하게 흘러갔다. 날렵한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웅장하게 사방으로 울려 퍼져나갔고 내 귀는 얼얼해졌다. 바로 옆에 있는 남편과 딸아이의 목소리, 지저귀는 새의 노래, 살랑이는 바람에 속삭이는 잎사귀, 오고 가는 사람들의 웃음. 이 모든 것이 해변 모래 속 조개껍질처럼 샘물의 질주 속에 파묻혀 들어갔다.
조금 더 상류로 갔다. 적막함 마저 감돌았다. 몇 발자국을 걸어 우린 작은 폭포의 굉음이 만들어지기 전, 과거로 가 있었다. 에매랄드빛 잔잔한 흐름 속에 사람들이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 의심했다. 차가운 물속에 반쯤 잠겨있는 길쭉한 무언가가 정말 사람들이 맞는지에 대해. 좀 전에 손을 잠깐 담가봤을 때 물이 얼음장같이 차가웠음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비슷해 보이는 멜빵바지와 모자를 쓴 차림으로 낚싯대를 잡고 있었다. 허리 또는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물깊이에 서서 저 멀리 긴 낚싯줄을 드리우며.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브래드 피트가 낚싯줄을 교향악단 지휘자처럼 유려하게 휘두르던, 그 플라이 낚시였다.
나는 낚시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고, 아마도 앞으로 계속 없을 예정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이해하기 위해, 그 유명한(하지만 오래된) 영화 포스터와 영화 속 낚시장면을 머릿속에 형광등 켜듯 번쩍 떠올린 것도 큰 일을 한 것처럼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이마에 땀을 닦아내는 심정이었다.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가 언제 그 영화를 제대로 봤던가. 끝까지 다 본 적이 없었거나, 다 봤어도 내 머릿속 장기기억 저장소에 가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오직 수능시험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경주마 같았던 고등학생의 나에게도, 성인이 되는 법에 서툴어 넘어지기 일쑤였던 대학생의 나에게도, 영화의 내용은 이해될 만한 그 무엇이 되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브래드 피트와 그의 열렬한 팬이었던 내 친구, 나비처럼 자유롭게 허공을 가로지르는 긴 낚싯줄만이 그 영화의 파편으로 나의 뇌리에 남겨져 있었다.
영화의 원제는 A river runs through it. 오늘 밤 당장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내가 예전에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눈부신 자연 속에서, 내가 예전에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사람 사는 이야기가 흐를 것 같았다. 그 등장인물들의 삶을 따라 나도 같이 흐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의 무게와 겪어온 고뇌의 크기만큼은.
우리 셋은 벤치에 앉아서 한결같은 물의 흐름과 낚시하는 사람들의 미묘한 움직임을 고요히 바라보았다. 차가운 인내심 속에서 침묵을 지키며 낚시하는 사람들의 진지함이 낚싯줄과 함께 날아다녔다. 그것은 삶을 향한 그들의 뜨거운 진심이 아닐까. 무언가를 놔주기 위해, 무언가를 흘려보내기 위해, 그리하여 삶을 계속 살아내기 위해. 인간이 아무리 용을 써보아도 붙잡을 수 없는, 때로는 과도하게 사로잡혀 있는 인생이라는 것은 강물이 흘러가듯 그렇게 내버려 둬야 하는 것임을 깨닫기 위해.
베넷 씨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베넷 가족이 정착하기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 흘러왔던 이 초록빛 샘물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머무르지 말고 나아가라고. 웅크리고 싶은 만큼 더 길게 뻗어보라고. 붙잡으려 하지 말고 흘려보내라고. 붙잡히지 말고 같이 흘러가라고. 어딘가에 부딪히면 힘을 빼고 그대로 튕겨나가 보라고. 그 끝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채, 흐름에 맡겨보라고.
물은 그저 흐르는 게 아니었다.
흐르는 물은,
인생에 대한
포기가 아닌 관심이었고,
무관심이 아닌 믿음이었고,
불신이 아닌 포용이었고,
부정이 아닌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