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amec Spring Park,
St.James, MO
시간은 5월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집 밖의 공기는 어느새 여름 냄새가 났다. 파란 하늘에 동그란 오렌지빛 햇살이 퍼져 나왔다. 가볍게 걷기 좋은 날이었다.
한적한 미주리 시골길을 달리다 보니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다.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안전한가. 일순간 두뇌 회전이 멈춘 것 같았다. 핸드폰 화면 속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자그만 안테나의 빈자리로 인해. 현생 인류의 출현 이후 기나긴 시간 동안 인터넷 따위 없이도 인간은 잘 살아왔는데. 미국 미주리주 어딘가에서 토네이도처럼 불어닥친 그의 부재가 우리의 정신력을 순식간에 헤집어 놓았다. 그 와중에 우리 가족은 한 사람의 구원 덕분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구원자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에 남아있을 동물적 방향감각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나의 남편이었다.
처음 보는 색이었다. 연두색과 초록색, 청록색과 에메랄드색이 오묘하게 섞여있었다. 분명 색이 있음에도 투명했다. 새들의 노랫소리는 귀를 간지럽히고 나뭇잎들은 눈이 시리도록 싱그러웠다. 샘은 우렁찬 소리와 함께 소용돌이치며 땅속에서 솟아 나왔고, 빠른 속도로 퍼져서 흘러갔다.
‘깊은 산속 옹달샘’으로 시작하는 동요를 부르며 커왔다. 음악책에 그려진 옹달샘은 자그마했다. 귀여운 토끼가 와서 몇 모금이나 마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얼마나 물이 자주 솟아나는지 한 번에 뿜어내는 양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샘은 동요 속 잔잔한 옹달샘뿐이었고, 그 조차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샘은 하루 평균 1억 갤런(378,541,178리터)의 물을 흘러낸다고 한다. 내 상상력이 닿을 수 없는 물의 숫자가 아닌가. 우리는 물이 가는 방향을 따라 걸어보았다. 굉음을 내며 폭포수처럼 흘러가는 샘물에게 비장함 마저 느껴졌다. 오늘 우리의 목표지점까지 가자, 하며 마라톤 질주 하듯. 신나게 달려 나가는 물방울 무리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시원하고 개운했다. 내 머릿속 모든 걱정을 씻어서 지워버릴 것처럼.
팔에 소름이 살짝 돋았다. 일 년 내내 물의 온도를 13도 정도로 유지하는 샘물 옆에 계속 있어서일까.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양의 물을 매일 솟아내는 샘에게 경외감이 느껴져서일까. 깨끗한 물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자연에게 물을 오염시키는 활동만 해온 나는 오늘도 배워야 하는 사람이다. 순수한 눈빛으로 나의 딸이 나를 보고 있으니.
공원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낚시하는 무리들, 소풍 나온 가족들, 우리처럼 산책하는 부부, 연인들까지. 그 많은 사람소리는 자연의 새소리, 물소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광활한 자연 속에 인간이 아주 작은 부분인 것처럼.
자연 안에서
우리는
안심하고
안전하다.
하늘이 맑았다. 어느 순간 눈빛 하나 바꾸지 않고 하얀 구름으로 빗방울을 내리기 시작했다. 에메랄드 샘물 옆에 놓인 나무 테이블 위에 빨간색과 하얀색의 체크무늬 테이블보를 깔고 점심을 막 꺼낸 어느 가족을 보았다. 그들은 천천히 음식을 덮고 있었다. 비 온다고 어느 누구 하나 부산한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흘러가는 샘물을 보면서 다리 위를 서 있는 우리 가족이 있었다. 잽싸게 비를 피하려고 어디론가 뛰어갔을 법한 우리가 비를 맞으며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신기한 곳이었다.
나무와 풀과 샘이
온통 초록으로 어우러지고
무지개 송어가
첨벙 헤엄치는 이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