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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치 둘

부서지는 햇빛

by 맑음의 바다



Mesa Verde National Park
Colorado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국어시간에 외운 시조가 불현듯 떠오른다. 오르고 또 올라도 내비게이션은 길 안내를 멈추지 않는다. 높고 평평한 고원 위에 초록 숲이 무성하고 물의 침식으로 가장자리가 가파른 협곡이 보인다. 이래도 되나 싶다. 해발 2,600미터를 다리 근육 한 번 쓰지 않고 올라가다니. 내 땀방울로 짭짤해져 김밥이 더 맛있었던 한라산이 1,950미터였던가. 사람이 이렇게 쉽게 올라도, 뫼는 높기만 하더라.








약 600년부터 고대 푸에블로인(Ancestral Pueblo)들은 고원 위에 움집과 농경지를 만들며 살았다. 약 1,200년부터는 100여 년 간, 절벽 아래 동굴 속에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생활했다. 동굴 안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바람을 막아줬다. 아침에 고원 위로 올라가 농사짓고, 저녁에 다시 절벽 집으로 돌아왔다.



Sqare Tower House



보기에도 아찔한 절벽을 아침저녁으로 오르내렸다는 사실에 머리가 어질하다. 그들에게는 고소공포라는 단어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수십 미터의 사다리를 타거나, 절벽에 파놓은 홈 안으로 손과 발을 넣어 이동한 그들을 상상한다. 농경도구나 수확한 농작물 등을 무겁게 등에 메고, 어떤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절벽에 매달렸던 모습을.


하늘이 꾸르릉거린다.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바람이 거세진다. 빗방울이 바람을 타고 춤을 춘다. 날씨가 짓궂다고 느끼는 순간, 대자연 속에 티끌 같은 나를 깨닫는다. 회색 구름도 비바람도 그저 자연의 한 모습일 뿐인 것을.


국립공원 안에 보존되어 있는 600여 개의 절벽 주거지(Cliff Dwellings) 중에서 가장 넓은 집 앞에 우리는 서 있다. 200여 개의 방이 있는 대저택은, 이곳을 발견한 유럽계 미국인들에게 궁전(Cliff Palace)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원주민들은 뭐라고 불렀을까. 남겨진 기록은 없다. 아쉬운 마음에 더 ‘자연’스러운 이름을 찾다가 문득, 빨강머리 앤이 떠오른다. 그녀는 초록 지붕집에 처음 가던 날에 가로수길을 ‘기쁨의 하얀 길’, 배리의 연못을 ‘영롱한 물빛 호수'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Cliff Palace



비바람이 거세진다. 내 마음은 바람을 타고 다니는 빗방울인 듯 우왕좌왕이다. 서둘러 딸아이의 사진을 남긴다. 머리 위에 꽂은 노란 리본핀이 바람에 날아갈까 두 손으로 꼭 붙잡은 채, 아이는 차가운 빗줄기에 눈을 질끈 감는다. 그녀 등 뒤로 보이는 궁전은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 속에서도 고요한 밤 같다.


이름이 번개처럼 스친다. ‘바람이 쉬어가는 집’은 어떨까. 비바람이 몰아쳐도, 사랑이 머무는 아늑한 공간. 어쩌면 내가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으리으리한 궁전보다 그저 따스한 집에 살고 싶은 마음. 고대 푸에블로인이 되어 그 광막함 속에 가만히 앉아본다. 건너편 난간 너머에서 후다닥 뛰어가기 바쁜 우리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비가 뭐라고.


차 안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우리가 다 보지 못한 598개의 집들을 생각한다. 돌아가는 길에 몇 개는 더 볼 수 있으리라. 개수는 중요하지 않다. 이곳에 살았던 이들은 많은 시간을 절벽에 매달려 있었지만, 그 영혼은 바람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지 않을까.


절벽을 오르지 못하는 나는, 살면서 아등바등 매달린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놓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힘겹게 붙잡았던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나도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비바람은 서서히 잠잠해지고, 먹구름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내비친다. 모든 것은 다 적당한 때가 있다.








국립공원을 돌아본 뒤, 기념품가게에 들어간다. 딸아이는 여행 중에서 없어서는 안 될 첫 번째로 기념품가게를 꼽는다. 주니어 레인저 프로그램을 완수하고 배지를 당당히 수여받지만, 그녀의 정체 모를 의무감은 여기서도 빛을 낸다. 어느 날부터인가 알 수 없는 사명감이 생긴 남편도 있다. 아빠와 딸은 국립공원 우수고객이 될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매장 안을 공부하듯 제품 하나하나 연구한다.


패치 앞에서 서 있는 남편 머릿속을 들여다보자. 복잡할 것 같지만 단순하다. 예쁜 패치가 없으면 속상하다. 깊은 감동을 받은 곳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예쁜 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다만, 모두 사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아내가 있어서, 바둑 두는 심정으로 열 수 앞을 내다봐야 한다. 아름다운 곳일수록 관대해지기도 하는 그녀를 설득하는 일은, 그럼에도 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사장님 결재받는 것보다 낫지 않겠냐는 심정으로 오늘도 해보자고, 그는 다짐한다.





패치 안 절벽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룬다. 집집마다 문과 창문으로 사용한 네모난 구멍들이 나를 보는 듯 빼꼼 얼굴을 내민 것 같다. 지붕과 그늘 속에 스며든 보랏빛은, 해 질 녘 마을에 내려앉은 긴 하루의 색이다. 푸른 나무들이 마을을 감싸 안듯 숲을 이룬다. 세월의 얼룩은 검은 선과 갈색 물줄기가 되어 햇살을 머금은 노란 빛깔과 함께 절벽을 타고 흘러내린다.


반짝이는 별빛인지, 부서지는 햇빛인지 모를 빛의 조각들을 하늘 속에 그려보는 찰나, 화들짝 정신이 든다. 작은 패치 하나에 이렇게 빠져들 줄이야. 네모난 집, 동그란 동굴, 커다란 하늘, 척박한 듯 풍요로운 삶. 붉은 기운이 도는 따스한 흙빛 테두리를 따라, 바람도 숨을 죽이고 지나간다. 겹겹의 시간이 조용히 머문다.


해바라기처럼 미소를 활짝 피운 남편은 의기양양하다. 훗, 내 말이 맞지? 하는 눈빛으로.








방문자 센터 앞에 높다란 조형물이 있다. 절벽에 파놓은 홈을 밟고 손을 짚은 채 무거운 바구니를 메고 있는 그의 힘겨움이 느껴진다. 안쓰럽게 굽은 등, 단단히 솟아오른 근육, 끈기가 맺힌 손과 발. 그는 절벽 아래 지켜낼 가족을 생각하고 있을까. 낭떠러지에 매달린 생존의 삶이, 가슴속 어딘가를 뜨겁게 만든다. 불룩한 근육 없이 손가락 터치 몇 번만으로 집에 들어가는 나를 생각한다.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건 무엇이었을까.


어느 날 그들은 홀연히 이곳을 떠난다. 700여 년을 일궈낸 익숙함을 등지고. 남쪽(현재의 뉴멕시코, 애리조나)으로 이주하여 다른 기후와 환경 속에서도 적응해 나간다. 그렇게 꽃 피운 문화와 삶은 현대 푸에블로 부족에게 깊은 뿌리와 같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들이 누구인지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 눈부시다. 비 온 뒤 개인 하늘에 비추는 한 줄기 햇살처럼.



그들은 묻는다.
너는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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