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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리 Jan 28. 2023

앞구르기하면 쥐구멍을 나갈 수 있을까

중증외상환자의 교도소 수감기 (3)

이 글은 27층 건물에서 떨어져 기적과 같이 살아난 제 환자인 김용식 (가명) 군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현재 교정시설에 수감 중인 용식이가 보내 온 편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하였습니다. 




- 왜 태어났니? -


나는 22년 전 태어나버렸다.

원치 않은 임신이었을까, 아니면 그들이 지고 가기엔 내가 너무 큰 짐이었을까.

뭐가 되었든 축복받지 못한 탄생임에 분명하다.


'엄마'라는 단어를 배우기 전, 보육원 문 앞에 버려졌다.

보육원 선생님들이 자기를 엄마라고 부르라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엄마라고 부른 적은 없다.


어린이집 재롱잔치를 할 때면 친구들이 부모님 손 꼭 잡고 오는 모습이 보기 싫어,

나만의 은신처인 지하실에 몸을 꽁꽁 숨기곤 했다.

엄마 찾아달라고 때를 쓰거나 울어도 되었으련만.


깔깔거리며 웃는 친구들과 환호하는 학부모들, 거기에 화답하듯 울려 퍼지는 재롱잔치 음악 소리가

지하실 천장을 타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나의 발 끝을 희롱하듯 간지럽혔다.

그래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울면 지는 거니까. 

울면 엄마가 보고 싶어 질 테니까. 




- 앞구르기 -


초등학생 때는 점심시간이 가장 싫었다.

지금은 아마도 무상급식이겠지만, 당시에는 돈을 내야만 급식을 먹을 수 있어서

물배를 채우거나, 보육원에서 주는 발냄새나는 아침밥을 목구멍까지 채워 넣고 저녁까지 버티기 일쑤였다.

그것마저 안되면 점심시간에는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 숨어있었다.


내 인생은 늘 쥐구멍 신세였다.

어린이집에서도, 초등학교 급식시간에도.

그리고 지금도 4평 남짓 한 쥐구멍 같은 공간에 12명의 재소자들과 옹기종기 붙어 앉아 있다.


그래도 쥐구멍에 볕 들 날은 있다 했나.

어느 날 학교 복도에서 우당탕 뛰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는데, 앞구르기를 하며 착지하는 모습을 우연히 체육선생님이 보게 되었고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기계체조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게 되면 자유를 박탈당할 것 같아 거절했다.

그러나 감독님은 포기하지 않고 보육원이며, 초등학교며 계속 따라다니면서 운동을 해보자고 권유했다.


"운동하면 밥도 주고 간식도 줄게. 계절마다 옷도 제공해 줄 수 있어."


보육원 출신이라 밥도 못 먹고 옷도 물려받는 걸 알고 날 무시하는 건가 싶었다.


침묵이 흘렀고, 다시 감독님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운동해서 성공하면 돈도 많이 벌고, 부모님도 널 먼저 찾아올 거야.
TV에 나오게 되면 없던 부모님이 생기기 마련이지."


머리가 띵했다.

부모가 날 먼저 찾고, 없던 부모가 생긴다고?

개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부모라는 단어가 어린 마음에는 꽤나 크게 동요를 일으킨 것 같다.


앞구르기만 잘하면 부모가 없어 도망치듯 들어간 지하실과, 쥐구멍에서 이젠 나올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기계체조팀에 들어가 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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