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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리 Jan 28. 2023

인간 안 될 새끼

중증외상환자의 교도소 수감기 (4) 

이 글은 27층 건물에서 떨어져 기적과 같이 살아난 제 환자인 김용식 (가명) 군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현재 교정시설에 수감 중인 용식이가 보내 온 편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하였습니다. 




- 배신 - 


기계체조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보육원에서 주는 발 냄새나는 밥을 안 먹어도 되고, 

일요일 점심마다 인근 교회에서 주는 라면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학교 수업은 4교시만 하고 체육관에서 저녁 8시까지 앞 구르고, 뒤 구르는 생활이 이어졌다. 

하루 종일 굴러 온몸은 생채기에, 멍이 가시는 날이 없었지만

밥도 먹고, 부모님을 찾을 수도 있는 운동을 왜 진작에 하지 않았나 싶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 

점점 감독과 코치에게 욕을 먹고 맞는 일이 늘어갔다. 

굳은살이 뾰족뾰족 박힌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뺨을 맞고, 

골프채 손잡이를 잘라서 만든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기도 했다. 

특히 슬리퍼로 가슴을 맞으면, 주먹으로 맞는 것보다 훨씬 아팠다. 


그래도 엄마를 찾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버텼다. 


그 결과 <문화체육관광부>, <교보생명>, <포스코>, <전국체전> 등등 수많은 시합에서 셀 수 없을 정도의

메달과 트로피를 받았고, 시를 대표하는 최우수 선수가 되었다. 


목에 걸리는 메달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엄마의 얼굴이 점점 또렷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상도 많이 탔는데 이제 우리 부모님 찾을 수 있죠?"


여느 날과 다름없이 몸을 풀면서 문득 던진 내 질문에

순간 그 넓은 체육관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해졌다. 

내가 실수한 건가?

몇 년간 운동을 하면서 한 번도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 아마도 내가 부모님을 잊고 산다고 생각했던 걸까?


몇 초의 시간이 지났을까. 


"지금은 아니고, 조금만 더 열심히 해서 성인이 되면 부모님 찾을 수 있어."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몇 년을 개고생해야 부모님을 찾을 수 있다니. 

뺨을 맞아 코피가 나도, 골프채 막대기에 맞은 엉덩이가 짓물러 터져도 참아냈던 응어리가 폭발했다. 


배신이었다. 

또 배신을 당했다. 

날 버린 부모로부터, 감독과 코치로부터. 


이제야 쥐구멍 신세 벗어나나 싶었는데, 구멍 밖으로 나오라는 손짓은 모두 허상이었고 기만이었다. 


그렇게 난 16세가 되던 해에 운동을 그만두었다. 




- 폭주 -


운동을 그만두고 방황이 시작되었다. 

불량식품도 먹고, 길에서 '앵벌이'를 하며 모은 돈으로 피씨방에서 밤을 새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더 행복했다. 

이젠 아무런 기대도 없이 살 수 있어서, 찾을 수 없는 사람 때문에 참고 견뎌야 할 일이 없어져서. 

더 이상 운동하라고 때리는 사람들도 없어서, 정말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대한체조협회 전무님이었다. 

잘 지냈냐는 인사치레의 말 한마디 없이, 서류 하나를 들이밀었다. 


"운동 안 할 거면 여기에 싸인해."


"..........."


"사실 교육감님이 너 운동 절대 그만두지 못하게 하라고 하시더라. 

설득하려고 왔는데, 운동 그만두고 잘 지내는 모습 보니 운동하라고 얘기를 못 하겠네."


순간 망설여졌으나, 더 이상 어른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싶지 않았기에 

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싸인을 했다. 

이제 정말 운동은 안녕이다. 





운동도 안 하고 방황만 하다 보니 보육원에서는 미운털이 잔뜩 박힌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사건이 터졌다. 


보육원에서는 설날이면 원장님께서 원생들에게 5000원짜리 문화상품권을 주시곤 했다. 

하필 그날, 나눠주고 남은 문화상품권이 없어졌다. 

운동을 때려친 뒤 매일 밖에서 겉돌 던 내가, 공교롭게도 그날은 밖에 나가지 않고 보육원에 있었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내가 문화상품권을 훔쳐간 범인으로 몰리게 되었다. 

아니라고. 

정말 아니라고 수 백번 말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올타쿠나, 기회라도 잡은 냥 

그날 비번이었던 보육원 사무국장이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보육원으로 달려와 

방 안으로 날 질질 끌고 가두었다. 

축축하고 곰팡내 나는 어두운 방 안이었다. 

닫힌 문틈으로 흘러 들어오는 희미한 빛줄기를 등진 사무국장의 퉁퉁한 다리가 한 걸음씩 나에게 다가왔다. 

이윽고 날 선 구둣발이 가슴이며 배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인간 안 될 새끼. 죽어."


발길질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이러다간 정말 죽겠다 싶었다. 

한참을 그러다 지친 사무국장의 구둣발이 잠시 주춤할 때,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 나와 경찰에 신고했다. 

하도 맞아 감각이 없어진 배를 문지르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경찰이 도착했다. 


"잘못했으니까 맞은 거네."


분명 맞은 사람은 난데, 아무 잘못도 없는데..

경찰로부터 돌아온 말은 "괜찮아?"가 아니었다. 


머리가 숨을 쉬지 않았다. 

나의 모든 것이 부정당했다. 난 인간 새끼가 아니었나 보다. 정말 죽어야 했나 보다. 


이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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