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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리 Jan 28. 2023

오줌싸개의 가출  

중증외상환자의 교도소 수감기 (5)

이 글은 27층 건물에서 떨어져 기적과 같이 살아난 제 환자인 김용식 (가명) 군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현재 교정시설에 수감 중인 용식이가 보내 온 편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하였습니다. 




보육원 사무국장에게 죽지 않을 정도로 맞은 후, 경찰이 왔고 

그래도 미성년자라고 보육원을 나와 임시 보호소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구둣발로 짓이겨져 곤죽이 되어 있는 내 얼굴을 본 임시보호자 관계자는 

벌레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어차피 2주 있다가 다시 보육원으로 갈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2주 후에 다시 그 지옥으로 돌아간다고?

순간 누군가 목을 비틀어 죄는 느낌이 들었다. 

보육원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 또 얻어터지고 정말 죽을지도 모르지만 될 대로 돼라 싶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임시보호소에서 며칠을 지냈을까. 날 두들겨 팼던 보육원 사무국장이 찾아왔다. 

사람 좋은 미소를 한 채로. 


"딸이 2명인데 장애를 갖고 있어. 
너하고 비슷한 나이또래야. 
니가 내 아들 같아서 나도 모르게 때렸다."


아들 같아서 구둣발로 그렇게 배를 걷어찼구나. 

아들 같아서 죽으라고 소리 질렀구나. 

미친 새끼...


분명 마음은 저 놈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내 고개는 제멋대로 땅을 보고 숙여졌다. 


지독히 학습된 무력감이었다. 

자기 배로 낳은 새끼를 버린 부모, 날 거두어 주었으나 죽이려고 한 보육원,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경찰. 

이 모든 것들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내 몸과 마음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너도 화가 나서 신고한 거지? 자 이거 받고 마음 풀자."


실실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 보육원 사무국장의 축축한 손에 쥐어진 돈 만 원이 내 코 앞에서 흔들거렸다. 

관자놀이를 찌르는 듯한 담배냄새와 싸구려 향수냄새가 기묘하게 어우러져 

어서 돈을 받으라고 최면을 거는 듯했다. 


병신 같은 무력감은 내 팔을 뻗어 지폐를 움켜쥐게 만들었고, 

그렇게 만 원짜리 한 장과 함께 나는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갔다. 




"김용식. 넌 앞으로 용돈금지, 외출금지야."


다시 돌아온 보육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용돈으로 받던 500원마저 받을 수 없게 되었고 보육원 문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사고뭉치, 천덕꾸러기, 거짓말쟁이, 도둑놈. 

보육원에서 제대로 낙인이 찍혀 구박과 윽박은 일상이 되었다. 


그때부터 누군가가 크게 소리 지르면 바지에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줌을 싸면, 바지도 못 빨게 하고 누린내 나는 축축한 바지를 그대로 입고 밖에서 자라고 쫓겨났다.

제대로 걷지도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밖으로 나가, 바지가 마르길 기다리며 밤을 지새웠다. 


어쩌면 그때 내가 마르길 기다린 건, 소변이 아닌 수치심이었을 거다.




보육원을 가출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박정만 바보, 멍청이 메롱.'


어느 날 벽에 연필로 삐뚤빼뚤 적은 낙서 하나가 보육원을 발칵 뒤집어놨다. 

박정만은 보육원 원장이었다. (가명)


원생 전체가 소집되었다. 


"이거 누가 적었나?"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 껌뻑이는 눈꺼풀 소리만 들렸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거 누가 적었냐고!"


누가 낙서를 했는지 묻는 박정만 원장의 눈은 처음부터 날 쏘아보고 있었다. 

정말 낙서한 범인을 색출하고 싶어서 묻는 질문이 아니라는 걸 난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시커먼 그림자가 뱀처럼 다가와 내 발등을 덮었다. 


"김용식 이거 너가 했지?"


"안해요..나..안해요 절대.."


무력감이 이번엔 내 혀를 제멋대로 놀려, 앞 뒤 맞지 않는 말을 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눈물이라도 흘렸으면 좋으련만. 야속한 내 몸은 다시 바지를 적셨다. 

보육원의 회색 시멘트 바닥이 나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이루며 검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 비릿한 지린내가 나를 에워쌌다. 


"이거 너가 한 거잖아! 자꾸 거짓말할래?!"


"안했어..나. 죽어도 안했어!"


"그래? 그럼 증명해 봐."


원장은 창문을 활짝 열어재끼고 나를 창문 앞으로 밀었다. 

당시 보육원 건물은 3층 높이였다.

억울하면 어서 뛰어보라는 듯 원장의 손가락은 창문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 너머로 보육원 선생들과 친구들은 아무 말 없이 방관하고 있었다.  


아 내가 죽어야 끝나는구나. 


"....죄송해요.."


그 말에 원장은 창문을 가리키던 손을 거두는 가 싶더니, 곧바로 내 뺨으로 향했다. 


철썩. 

철썩. 

철썩.


맞고 있는 뺨은 아프지 않았다. 

죽어야만 내 말을 믿어준다는 사실이 더 아팠다. 


16세 겨울, 난 보육원을 가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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