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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리 Feb 01. 2023

그 놈, 냄새

중증외상환자의 교도소 수감기 (6)

이 글은 27층 건물에서 떨어져 기적과 같이 살아난 제 환자인 김용식 (가명) 군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현재 교정시설에 수감 중인 용식이가 보내 온 편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하였습니다.



- 양아치 -


16세 겨울, 보육원을 가출했다.

그 당시 난 키 148cm, 몸무게 42kg로 누가 봐도 초등학생처럼 보였다.

가족도 돈도 없고, 왜소한 체격에 무시당할까 싶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일명 양아치가 되었다.

누군가를 때리지는 않았다.

보육원에서 늘 얻어맞고 살았기 때문에, 밖에서도 맞기 싫어 센 척만 했을 뿐.


가출하고 배운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앵벌이'.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집에 가야 하는데 차비가 없어서 집에 못 간다며 구걸을 했다. 체구가 작던 내가 불쌍한 표정으로 앵벌이를 하면 하루에 만 원도 넘게 모이곤 했다.


그 돈으로 담배도 사고 술도 사 먹었다.

그러다가 담배가격이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된 후부터는

길거리에 떨어진 장초 (긴 담배꽁초)가 있으면 주워 피우곤 했다.


잠은 주로 아파트 옥상, 지하 주차장, 운이 좋은 날에는 친구들 집에서 잤다.

말도 안 되게 추운 날에는 폐가에서 자기도 하고, 공중 화장실이나 차 밑에 들어가 웅크렸다.


편의점에 들어가 몰래 음식을 훔쳤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계산 안 하고 도망갔으며

교회, 성당을 전전하며 밥을 얻어먹었다.


내 배를 걷어차며 소리 지르던 보육원 사무국장 말마따나, 당시의 난 인간 안될 새끼였다.

이 글을 빌려

당시 OO동 아파트 관리실 아저씨와 OO식당 사장님, OO 편의점 사장님께 사과를 드리고 싶다.



- 화장실 -


아직도 그때의 기억은 거울을 보듯 또렷하다.  


새벽 5시, 난 버스정류장 인근 검은색 간판의 모텔 옆에 있는 포차 옆을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사오십대로 보이는 중년 아저씨가 술이 거나하게 취해 가게를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죄송한데, 집에 가야 하는데 돈을 잃어버려 이틀 째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습니다.

집에 갈 버스비가 없는데, 5천원만 주실 수 있나요?"


"어이구 어린놈이 뭐 하다가 집을 못 갔어? 부모님은 알고 계시고?"


와 씨...돈 받을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자, 더욱 불쌍해 보이기 위해 썰을 풀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저를 보육원에서 버리고 가셨는데....."


주절주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자,

술 취한 아저씨가 대뜸 베이지색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뭔가를 꺼냈다.


포차 옆에 있던 모텔 방 키였다.


"요 모텔 가서 기다리고 있어. 술 마저 먹고, 돈 찾아갈 테니까."


순간 느낌이 이상했지만 며칠 동안 씻지 못한 몸에서는 온갖 악취가 나던 터라,

웬 횡재냐 싶어 열쇠를 받아 모텔로 향했다.


띵동~ 띵동~


모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벨이 울렸고, 사장으로 추정되는 아줌마가 나왔다.

진한 마스카라와 어울리지 않는 인조 속눈썹을 붙인 눈꺼풀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벌건 립스틱이 덕지덕지 한 입술 사이로 자욱한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먼일이여?"


못 볼 것을 본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거지 몰골의 꾀죄죄한 꼬맹이가 모텔로 들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여기 포차 앞에 술 드신 삼촌이 방 키 주면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그러자, 사장 아줌마는 으레 껏 겪는 일인 듯한 표정으로 담배를 고쳐 물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까 그 아저씨한테 거는 듯했다.


"엉 오빠. 얘 방에 넣어두면 되지? 알겠엉~"


깜빡깜빡 죽어가는 복도 전등을 지나치며, 사장 아줌마는 익숙하게 날 방 안으로 안내했다.


당시 내 머릿속은 온통 씻을 생각 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따듯한 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들뜬 마음으로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쏴아아

적당히 덥혀진 물줄기가 얼굴과 등을 타고 흘렀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씻고 있는데, 술에 취한 아저씨가 방으로 들어왔다.


'이 아저씨는 술로 샤워를 했나'

술냄새가 진동을 했다.


아저씨는 불콰한 얼굴로 히죽히죽 웃으며, 내 등을 밀어준다면서 화장실로 들어왔다.


그때 난 샤워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아저씨에게 말을 걸지 말았어야 했고 포차 옆을 지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딸깍, 화장실 문이 닫히고

등을 밀어준다던 손은, 등이 아닌 곳을 향했다.

그 이후의 일들은...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습기와 술냄새가 역겹게 섞인 화장실 안에서, 그날 나의 영혼은 살해를 당했다.


아아아아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눈물인지 뭔지 모를 액체를 뚝뚝 흘리며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괜찮아. 처음엔 다 그럴 수 있어."


실오라기 하나 걸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벌벌 떨고 있는 내 몸뚱이를  

그놈이 쓰다듬을 때마다 경기를 일으켰다.

한참 동안 내 몸을 어루만지던 그놈은,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5만 원을 꺼내 탁자에 올려두고 방을 나갔다.


무슨 정신으로 모텔을 나왔는지 모른다.

찢어서 바닥에 흩뿌린 5만 원 조각들은 마치 내 영혼을 보는 듯했다.  

모텔 사장 아줌마는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일까?

엉엉 울며 나가는 나를, 몽롱하게 쳐다보던 그 눈을 잊을 수가 없다.




- 내가 타투를 한 이유 -


그날 이후, 길거리에서 그놈과 비슷한 사오십대 아저씨를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 얼어붙었다.

앵벌이를 계속하면, 또 그놈을 만날까 무서워 두 번 다시는 앵벌이를 하지 않게 되었다.

평소 목욕탕을 좋아하던 내가, 그 일 이후로 절대 목욕탕을 가지 않게 되었다.


씻어도 씻어도 그놈 냄새와 촉각이 내 몸에서 가시질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내 피부를 모조리 도려내고 싶었다.


한 친구가 문신 마루타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초짜 타투이스트가 경험을 쌓기 위해 공짜로 문신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문신은 말 그대로 잉크를 몸에 넣는 것이다.

5개의 바늘이 1초에 몇 천 번씩 찌르면서 살에 잉크가 박힌다.


기꺼이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그놈 냄새를 지울 수 있다면.


너무 아팠고, 피도 많이 났다.

문신이 끝나고 거울을 보니 팔과 가슴이 벌겋게 부어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잉크냄새인지 흘린 피냄새 이었는지 모를 두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찌름과 동시에

그놈 냄새가 안 나는 것 같았다. 


정말 행복했다.

16년 살면서 이런 행복은 처음이었다.


그 후로 팔, 다리, 등, 배..온 몸에 문신을 했다.

문신을 하면 할수록 그놈 냄새는 옅어져 사라졌고, 더 이상 귀엽다는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그때의 일을 기록하기 위해 적고 있는 지금도 숨이 안 쉬어지고, 너무 괴롭다.

난 아직도 그놈 얼굴과 몸을 기억하고 있다.


신고하면 되지 않았었냐고?

당연히 해봤다. 그러나 역시 경찰들은 이번에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끝내 잡을 수 없었던 그놈에 대한 분노는

하필 그날 포차 골목을 지나가 앵벌이 짓을 했던 나에게로 향하여, 내 자신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사기도 치고, 물건을 훔치고 범법 행위를 숨 쉬듯 저질렀다.

문신은 더 이상 날 왜소하게도, 가여워 보이게도 만들지 않았기에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난 정말 양아치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소년 재판을 받게 되었다.

보통 재판이 잡히면 겁을 먹게 마련이지만, 난 겁나지 않았다.

재판을 받아 소년원에 가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고 들어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나의 방황을 끝내 줄 뭔가가 필요했다.

내 잘못을 합리화하여 세상 탓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나는 소년법상 최고 형량인 10호 (장기 소년원 2년) 처분을 받아, 소년원에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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