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 그리고 숲 Nov 30. 2019

딸의 편지

2017년 11월 15일


엄마 안녕하세요. 엄마 딸 채림이에요.

오늘따라 마음속에 수많은 생각과 하고픈 말들이 뒤엉켜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에 글을 써보아요. 11월 중순에 걸맞게 날이 부쩍 추워졌어요. 요즘엔 예전과 다르게 계절의 변화가 급격하답니다. 천천히 흐르던 그때의 시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대부분은 엄마라는 존재가 너무도 당연하겠죠?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면 전화를 걸면 되고, 통화가 어려울 땐 메시지를 나눌 수 있겠죠? 그럴 필요 없이 방문만 나서도 엄마를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도 있겠죠?

저는 그랬어요. 너무도 실감을 하기 어려워 내내 멍하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아니 몇 년이 지난 대도 앞으론 평생 단 1분도 마주할 수 없다는 잔인한 현실에 또 멍하게 지내다, 내내 멍하다… 그렇게 몇 해를 보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엄마는 제게 당연한 존재가 아닌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 존재가 됐고, 엄마와 보냈던 시간들이 희미해지며 함께 했던 시간들이 신기루처럼, 뜬구름처럼 느껴지는 시기마저 마주하게 됐답니다. 엄마가 남들과 같은 엄마가 아닌, 그저 잠시 우리 곁에 머물다 간 천사처럼 느껴지게 되더라고요. 마치 현실이 아닌 달콤한 꿈을 조금 오래 꾼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문득 제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천사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엄마와 헤어지고 일찍이 존재에 대한 감사를 배웠음에도 유난히 오늘 자정은 조금 더 따스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감사함에 뭉클하고 가슴이 벅찼어요. 그와 동시에 엄마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단순히 엄마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펐던 건 아니에요. 저처럼, 어쩌면 저보다 더 꿈 많던 엄마의 날개를 지켜주지 못한 것, 엄마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게 점점 많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시큰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라는 엄마의 말에 크게 공감해요. 정말 공감해요. 그땐 몰랐는데 말이에요.

어느덧 저는 생각보다 엄마와 많은 걸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 그럴 수 없어 서운해요. 우리가 함께했던 시절이 너무도 아련해요. 집에 오면 엄마가 맞아주는, 언제든지 볼 수 있었던 그때의 감정이 너무나도 희미해요. 엄마라는 존재마저 희미해지는 게 싫어서, 엄마의 못 이룬 꿈들에 마음이 아려서, 그럴수록 저는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에요. 제 인생에 이토록 지대한 영향을 끼쳤단 작은 사실 하나가, 짧았던 엄마 삶의 의미로 남을 수 있을까요? 위로로 남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반드시 엄마가 되고 싶은가 봐요.

저를 낳아주고 길러주셔서, 사랑과 이별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엄마. 저에게도 엄마가 계셨던 시절이 있었던 거 맞죠, 저 엄마 딸 맞죠.

엄마 딸 채림이가 맞고, 잘하고 있고, 언제나 많이 사랑한다고. 큰 품과 팔로 꽉 안아주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엄마를 사랑하는 큰딸 드림. 00:40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의 일기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