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맛밤 Dec 04. 2023

친절한 멘트도 다시 보자.

건강검진 결과표 해석은 보수적으로.

 며칠 전, 예약해두었던 검사를 하러 종합병원을 찾았다. 병원 공기는 언제 맡아도 불편하다.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소독약 냄새에 사람들의 어두운 분위기가 더해져서일까. 분명 공기청정기를 빵빵하게 돌릴테지만 괜히 숨이 막힌다. 이 공간에 오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병원에서는 이틀 전, 하루 전, 당일. 열심히 안내 문자를 보내왔다.


 도착 접수를 하고 검사실 앞으로 갔다. 빈 자리를 찾기 힘들만큼 사람이 많았다. 이 곳은 유방, 갑상선 센터라 몇몇 보호자로 따라온 남자를 제외하고 거의 여자였다. 2인용 소파에 한 자리가 남은 것을 보고 걸어갔다. 여기 앉으라는 듯 옆으로 밀착해주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고개를 끄덕하고 푹 숙이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작년의 나처럼.



 작년까지만 해도 건강검진은 형식적 이벤트일 뿐이었다. 5월에 어린이 날이 있고, 8월에 광복절이 있는 것처럼 10월에는 건강검진이 있는 것. 그러면 11월에는 검진 결과가 날아온다. 역시 형식적으로 쓱 훑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제일 첫 장 여러 항목 중 E등급 (확인 검사 필요) 하나가 눈을 사로잡았다. 유방? 서둘러 뒷장을 넘겨 보았다.


"유방 X-선 검사상 유방에 석회화 소견입니다. 대부분 양성이고 현재 임상적 의의는 없으나, 유방에 만져지는 병변이 있거나 유두의 습진, 혈성분비물과 같은 임상증상이 있을 경우 유방전문의 진료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애매하다. 임상적 의의는 없지만, 이상이 있으면 진료를 받으라는 건가? 석회화가 뭐지? 양성이면 그래도 좋은쪽 아닌가? 찜찜하긴 했지만 가족력도 없고, 모유수유도 두 아이 합쳐 40개월을 했는데 설마 무슨 문제가 있겠나 싶었다. 하루를 바삐 보내고 아이들이 잠든 후, 묻어뒀던 찜찜함이 불쑥 올라왔다. 검색창에 "유방 석회화"를 입력했다. 미세석회화, 유방암, 등등 무서운 단어가 함께 뜬다. 맘카페 글은 못 믿지. 일반인들의 후기글은 가볍게 넘기고 유튜브에 들어가 유방 전문의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 양성: 크기가 크고 단독으로 떨어져있다.

- 악성: 크기가 작고(미세석회화) 모여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정도였다. 결과지만 받았을 뿐, 가슴 사진은 못봐서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 가슴 상태는 어느 쪽이란 말인가. 바로 병원 검색에 들어갔다. 운 좋게도 한 병원에 진료 자리가 남아있었다. 취켓 줍줍실력이 여기서도 발휘되었다.


 이틀 후 10시 45분. 교수님을 만났다. 유방 확대 촬영을 하고 다시 보자 하셨다. 촬영실에 가니, 보통의 유방 촬영보다 훨씬 아플거라 했다. 워낙 아픈 걸 잘 참는 편이기도 했지만, 새벽까지 유튜브로 본 무시무시한 케이스가 자꾸 떠올라 아픔을 느낄 정신도 아니었다. 덕분에 잘한다는, 쓸데없는 칭찬을 받았다. 다시 진료실 앞으로 갔다. 마지막 순서라 대기가 길거라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다른 방 교수님들과 간호사님들은 식사하러 갔다. 가득 채우고 있던 환자들도 다 가고 마지막 순서인 나만 남았다.


"맛밤님 들어오세요"

진료실에 들어서면서 재빨리 교수님 표정을 스캔했다.

"왼쪽 가슴은. 응 이건 괜찮은거고. 오른쪽."

갑자기 멈칫하신다. (뭔데요? 왜요?) 화면을 내쪽으로 돌려주시는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는 게 병이라는 건 바로 이런거다. 악성의 형태 바로 그것이었다. 저게 왜 내 가슴에?

"오른쪽 이건 확인할 필요가 있네요. 그런데 오늘은 초음파가 꽉 차서 예약 잡고 봅시다. 초음파 검사하고 나서 필요하면 조직검사 할 수도 있어요."

눈물이 차오르는걸 겨우 참고 끄덕이다 서둘러 나왔다. 간호사님이 설명하는 목소리도 흩어져버렸다. 병원에서 왜 종이에 번호까지 적어가며 안내해주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점심시간이라 의료진도 환자도 거의 없었다. 갑자기 억울함, 슬픔, 걱정 온갖 감정이 눈물로 터져나왔다. 그 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시려던 교수님 모습이 보였다.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런데 교수님이 이쪽으로 걸어오셨다. 애써 괜찮은 척 해보이는데, 기어코 눈물 버튼을 누르셨다.

"아이고, 그새 이렇게 눈이 새빨갛게 됐어?"

대답도 못하고 눈물을 닦기 바빴다.

"누가 보면 큰일 난 줄 알아. 왜 벌써 울고 그래."

엘리베이터가 오자 몇 층이냐고 물으시고 버튼도 눌러주셨다. 이렇게 울어서 운전은 어떻게 하냐, 차에 타서 좀 진정하고 조심히 운전해서 가라. 이러고 가면 아이들도 놀란다 등등...드라마에 나올법한 장면이었다.



 괜찮다는 결과를 받을 때까지 정말 암에 걸린 줄 알고, 이틀 밤을 울어서 3키로가 빠졌었다. 운동 열심히 할껄. 밥도 잘 챙겨먹을껄. 후회도 했다. 내가 아프면 아이들은 어쩌지 걱정도 하고, 술도 담배도 안하는 내가 왜 아파야하나 분노도 했었다. 결과적으로 모두 양성이고 추적관찰만 하면 되는, 며칠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앞으로도 건강검진 결과지의 친절한 안내 멘트는 의심의 눈초리로 볼 작정이다. 부드러운, 애매한, 애둘러 표현하는 모든 단어에 의심을 품고 끝까지 확인해봐야 한다. 엄마라는 사람의 건강은 두 번 세 번 챙겨도 모자람이 없으니.



(제목사진 출처: 픽사베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