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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암환자 May 25. 2022

회사 출근 6개월차, 내맘대로 재택근무하게된 방법

내 고객은 사장이다. 왜? 사장이 돈주니까.



이제 출근시간은 마음대로 하세요.
원하시면 주 5일 다 재택으로 하셔도 됩니다.



출근시간이 칼같았던 스타트업에서 함께한지 6개월만에 회사 이사님께 이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 뵈었을 때 일에 있어서는 세상 칼같고 서글서글하게 다가서기가 참 어렵게 느껴졌던 분이었는데. 그런 분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대박.


이사님은 '내가 보고 있지 않아도 제대로 일을 하는 모습'을 보길 원하는 분이셨다. 그래서 최대한 출근 시간에 맞추어 출근을 하고, 혹여라도 출근시간에 늦게 되는 날에는 그 늦은 시간이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업무를 더 빠르게 처리하는 것을 보여드렸다. 출근해서 일을 하는 시간에는 일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업무 진행상황을 미리 아실 수 있도록 내가 무슨 일을 끝내고 어떤 일을 시작하는지를 물어보지 않아도 메세지로 남겨두었다.


이렇게 딱 6개월을 보여드리니 '원하면 매일 재택근무를 하셔도 된다. 이제 어디에 계시던 업무에 지장없이 행동하시는 분이라는것을 잘 안다.' 라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을 듣고 너무 신이 나서 퇴근하는 길에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이사님께 인정받았어!!



누군가에게 인정 받는다는 것.

내가 인정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타자 빨리치기, 그림그리기, 받아쓰기 잘 하기, 영어노래 부르기, 춤 추기, 팔씨름하기 등등. 초등학교 꼬꼬마 시절 선생님과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어 교내에서 열리는 온갖 크고작은 대회에 나갔던 나는,


늘 '인정받기'가 목표였던 나는,


사실은 '칭찬받기'가 목표인 사람이었다.



2013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께서  당시 일하고계시던 삼계탕 가게에서 6-8월에 있는 초복, 중복, 말복에  쩔쩔 흘리며 뜨거운 삼계탕과 전기구이를 나르던 때부터 '남의 돈을 받을 ' 내가 일하는 철칙은  하나였다.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게 만들것.
나를 경험하면 나와 일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그리워지게 할 것.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이니까 말이 이렇게 번지르르하게 바뀌었겠지만 솔직히 처음 일을 했던 그 당시에는 마음 속에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 중 "내가 가장 뛰어나 보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일을 했다.


이런 나에게 어느순간 어머니께서 일침을 놓으셨다.



"민정아, 인정받기 위해 그렇게 하지는 마. 진심으로 너의 성장을 위해 일을 해. 사장이 볼 때던, 안 볼 때던 한결같이 일하렴.


그럼 너에게 또 다른 기회가 생길거야. 사장에게 필요한 건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 이거든. 돈을 받고 하는 100%보다 딱 10%만 더 해봐."




어머니가 일하고 계시던 삼계탕 집에서  알바를 하던 당시 어머니께서  주신  말이  귀에 들어온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주체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가 아닌 남이 세운 기준점에 도달하기 위해 온갖 힘을 쏟아부었을 테니까.


그 말이 들린 후부터 나의 일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목표도 달라졌다.


"받는 돈값보다 조금 더 해서 나를 믿게 만들자."


그 이후 식당 일을 할 때는 손님이 안계신 시간이라도 나무 의자 등받이 사이사이 먼지가 들어갈만한 곳을 닦아두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소금통과 후추통도 처음 오신 손님이 깨끗함을 느끼실 수 있게끔 윗부분을 닦아두었다.


영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며 패스트푸드 도시락을 파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는 내가 맡은 일은 홀에서 손님에게 서빙을 하는 것이라도 손님이 안계신 시간에는 주방에 들어가서 일을 돕거나 몇 안되는 테이블 근처에 있는 휴지 리필을 하거나 테이블들을 한번 더 닦았다. 추후 손님들이 몰릴 때를 대비하거나 곧 방문할 손님이 깨끗함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캐주얼 여성 옷가게에서 일을 할 때 손님들이 없으면 손님들이 흐트려놓은 옷걸이들을 처음 오신 손님이 기분좋게 쇼핑할 수 있도록 색깔별로 다시금 두거나 잘못 걸려진 옷걸이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내가 할 것을 더이상 찾을 수 없을 때에는 사장님께 "저 또 뭐 할까요?" 라고 물어보았다.



"저 또 뭐 할까요?" 라는 질문은 내 생각보다 참 중요한 질문이었다.


처음에는 하라고 말한 것을 다 해놓은 후 더이상 뭘 해야할지 몰라 무작정 질문했던 것이었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쌓이면 쌓일수록 내가 사장님께 물어보지 않고도 스스로 '사장님이 원하는 일들을 찾아서' 할 수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이런 날들이 쌓이자 내가 경험했던 사장님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와, 벌써 그것까지 했어?"



그리고 이렇게 일하는 시간들이 3년, 4년, 6년이상 쌓이자 나를 경험한 모든 사장님들이 이렇게 말했다.





너는  마음대로 해도 .
너는 알아서  하니까.



그 때 깨달았다.



"아, 신뢰를 얻으면 자율성이 생기는구나."



그래서 그 때부터 어떤 일을 하던 어떻게 하면 사장님이 좋아했나를 보고 어떻게 하면 사장님이 일을 덜 할까를 생각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하면 사장님이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게 만들까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비법은 간단했다.


사장님의 성향을 파악하고
사장님이 좋아할만한 선택지들을 만들어
선택에 도움되는 근거를 가지고
사장님이 가장 합리적이라 여길 선택지를 추천하는 것.


결국 사장을 고객처럼 생각하면 된다는 말이다.


고객은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 이다. 나에게 기꺼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건내는 사람은 가장 좋은 선택을 했다고 믿는 사람이다. 고객이 기꺼이 지갑에서 나를 위해, 또는 내가 파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해 돈을 꺼내게 하는 방법은 고객이 가장 좋아할만한 (선택할만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장도 나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내 인력을 쓰는 고객이다. 고객이 좋아할만한 것을 찾고 보여주고 거절당해도 수정하고 다시 보여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 아닐까. 우리는 '고객이 효과적으로 느끼는것'을 제공하면 된다. 나는 그 과정을 지속해서 사장님들의 신뢰를 얻고 자율성을 얻었다.



"당신이니까 믿어요. 당신이 말한 거니까 그게 가장 좋은 선택지이겠죠." 하는 말을 듣는 것.


나에게는 그게 늘 큰 뿌듯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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