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도보여행 영덕-울진 (1)
가야겠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저길 가는 거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이다.
일어나고 싶지 않은 시간에 겨우 눈을 뜨고 습관처럼 카카오톡 뉴스를 훑는다. 읽는 건지 눈알만 굴리는 건지, 엄지를 움직여 스크롤을 내렸다. 아무 생각 없이 터치한 글. 첫 화면이 글로 시작했다면 또 읽지도 않고 휙휙 내렸겠지.
이미 사고의 의지를 잃은 뇌에게 저항하듯, 반쯤 감긴 눈을 사로잡은 사진 하나. 짙은 초록의 소나무 숲 옆으로 광대한 바다가 펼쳐진 사진. 소나무는 키가 작고 빼곡했으며 구불구불 산길 옆으로는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법한 수평선이 있었다. 광활한 수평선. 그것은 마치 우주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지구의 표면 같았다.
뭔가 거창한 걸 해보겠다고 호기롭게 퇴사를 했다.
실업 급여로 수영이나 즐기다 이직하고 싶었으나, 그래도 주변을 의식해야만 하는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그래서 자유롭지 못한 나는 직업교육을 선택했다. 아무리 커리어에 도움이 된다지만 교육을 6개월이나 받는다고? 그럼 그동안 이직을 못하네? 오 찾았다. 놀기 좋은 핑곗거리. 교육 신청과 처리과정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마치 나의 백수생활을 응원하듯이.
일단은 신청을 하고 신나게 놀았다. 눈살을 찌푸리고 출근하는 무리들(다른 세상 사람들)을 지켜보며 수영장을 나섰고,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잠깐이나마 꿀 같은 낮잠을 자기도 했다. 헬스도 하고 볼링도 치고. 하루 종일 강아지만 끼고 누워있기도 했다. 자유를 만끽하기에 두 달은 너무 짧다. 그럼에도 어느 날들은 너무 지루하고 좀이 쑤셔 먹기만 했다. 저작근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 지루함을 아시려나.
두 달 후 나는 다시 쳇바퀴 속에 몸을 실었다. 자의 반, 타의(타인의 시선) 반.
직업교육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9시 반부터 6시 반까지다. 이건 회사 생활과 다름없다. 9시간 동안 이해하기 어려운 제4세계 언어를 타이핑하느라 눈이 아팠고, 거북목으로 생활하느라 저녁이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양쪽 사타구니는 앉아만 있는 생활 덕에 노폐물이 그득그득 쌓였다.
적응의 동물은 살지 못할 곳이 없다.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며 익숙한 환경에 금세 적응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 따윈 없다. 그저 기본이나 익혀두고 이수만 하면 된다. 이런 마음가짐은 장단점이 분명하다. 어렵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계속 출석 도장을 찍는다는 것이 장점. 반면, 일상의 굴레에 빠르게 적응함으로써 삶의 재미와 의미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 단점은 무서운 속도로 나를 지배했다.
이수를 한 달여 앞둔 12월의 첫날. 나는 그 사진들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전에도 즉흥적으로 살아왔고 한번 생각한 일들은 그것이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해도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광활한 바다와 숲이 공존하는 그곳에 가는 것. 물론 걸으면서 그 풍경들을 보고, 그저 걷고 또 무작정 걸어야 하는 것.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 아침에는 왠지 내가 달라져야 한다고 느꼈던 걸까. 미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게 나다웠고, 그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