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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on Mar 07. 2021

첫 브런치 글을 발행하며...

왜 나는 걷게 되었나

  

 십여 년 전, 시간을 보내는 게 일인 시기가 있었다. 지나고 나니 현실 도피가 확실하지만 그 당시에는 외면했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고, 집에만 있는 건 또 답답한.


 느지막이 일어나 티브이를 보며 밥을 먹고 쏟아지는 햇빛에 낮잠을 자기 일쑤였는데, 문득 어느 날 밖에 나가고 싶었다. 귀찮음을 이기지 못했던 답답함이 한계에 이르렀달까. 대충 입고 나가 집 앞 체육공원을 걸었다. 체육공원이라지만 작은 트렉이 있는 정도. 풍경을 보고 싶은 것도 아닌지라 그냥 원형의 트렉을 뱅뱅 돌았다. 다람쥐의 챗바퀴는 속도가 빠르기라도 하지만 나는 천천히 내 속도대로 그냥 걸었다. 같은 길을 뱅뱅. 



 노래를 들으면서 걸었는데 처음 30분 정도는 조금 힘들었다. 빠른 속도로 걸은 게 아니기 때문에 숨이 가쁘거나 한건 아니지만, 그동안의 와식 생활에 적응해서인지 갑자기 걸으려니 다리가 아프고 쉽게 지쳤다. 그래도 뭔 일인지 그냥 계속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어서 힘들다는 생각도 금방 지나갔고, 아무튼 간 걷는 다리를 멈추려는 게 더 어색할 정도였다. 자꾸 걷다 보니 일정한 속도로 다리를 움직이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니 몸이 알아서 자동으로 앞으로 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 한두 번 휴대폰으로 시간을 봤지만 나중엔 그것도 없이, 내가 무엇을 듣고 있는지도,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게 걸음의 리듬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양쪽 사타구니가 뻐근해지고 불현듯 시야가 돌아와 주변이 보인다. 무아지경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방금 잠에서 깨어난 듯 눈이 부시고 머리가 상쾌하다. 안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산다고 살았지만 늘 머릿속은 곰팡이가 낀 듯 항상 무겁고 답답했었다. 그걸 걸음이. 어쩌면 걸으면서 나를 스치는 바람과 신선한 공기가 씻어준 걸까. 끊임없이 걷고 있었지만 걸었다고 말하기는 좀 뭐.... 한 경험. 나는 어딜 다녀온 걸까. 걸음의 속도를 늦추면서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던 몸을 틀기가 무척 힘이 들었지만 억지로 집으로 향했다. 정신도 깨어있고 상쾌했지만 사타구니가 너무나 쑤셨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집에 와 시간을 보니 3시간가량 지나 있었다. 초여름 대낮에 더운 것도 모르고 밖에 있었다니.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잠시 누웠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온 세포가 잠으로 녹아내렸다. 처음 경험해 보는 단잠이었다. 





 그 이후 나는 매일매일 집 앞에 나가서 걸었다. 한번 나가면 3~4시간은 같은 곳을 뱅뱅 돌았다. 티브이 소리도 없고 침대도 없는 운동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분명히 아무 생각 안 했는데 이상하게도 많은 생각을 하고 뭔가가 해결된 것 같았다. 내게 필요한 게 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지만 안개가 걷혔다고 해야 할까. 상쾌한 바람이 스모그로 가득 차던 내 미래를 조금씩 씻어주고 있었다. 이 바람은 내가 일으킨 바람이다. 나 스스로의 몸부림으로 만들었다. 내 속에서 바람이 불어 동기를 부여해주고 의지를 주었다. 탈출하고 나서야 이전의 내가 무기력한 상태였음을 알았다. 


 지금도 간혹 일상에 지쳐 기력과 무기력을 오간다.

그러나 이제는 탈출하는 방법을 안다. 진정으로 쉰다는 것은 마냥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에너지를 충전해야 하는 것임을 안다. 사람마다 에너지 충전의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나에게 맞는 것은 걷는 것이다. 걸으면서 내 안으로 빠져들고 긴 명상에 들어갔다 오는 것. 이 경험을 나누기 위해 앞으로 글을 쓸 예정이다.


 내가 걸은 길을 같이 경험하고, 누구라도 걷는 행위에 대해 매력을 느끼길 바란다. 결국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걷기 좋은 길을 만날 수 있도록 건강한 변화를 일으켜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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