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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on Nov 14. 2023

함께 걸으며 추억 쌓기

가성비 트레킹은 지리산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곳을 가면 누구든지 함께 데려오고 싶은 사람이 생각날 것이다. 나의 트레킹은 걷기 명상과도 흡사하기에 주로 혼자 떠나는 것을 선호하지만, 어떨 때는 동행자가 있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긴 거리를 오래 걸어야 하기에 의지가 될 사람이 필요하고, 또 경치와 공기가 좋은 곳으로 가기에 이 모든 것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 것에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또한, 함께 한 경험이 적어도 2명 이상의 기억에 남을 테니 이 광활한 우주에 내 존재가 조금 더 새겨지지 않을까.


 사진처럼 남아있는, 걷고 싶을 때 항상 떠오르는 길은 남원이다. 20대 초반 어느 예능에서 지리산 둘레길이 나온 것을 보고 우리도 열정이 동했나 보다. 지금은 지리산 둘레길이 다양한 구간으로 나뉘었지만 당시에는 4개 코스만 있던 때였다. 꽃 핀 5월에, 제대로 된 코스 확인도 없이 무작정 등산화먼저 사서 떠났다. 내 생애 첫 등산화를 결제해 주시던 엄마의 모습.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을 텐데 내가 설레고 신나하니 엄마도 같이 들떠했던 기억이 난다. 동네 뒷산도 연례행사로 오를까 말 까인데 지리산이라니.... 나도 참 순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젊은 패기에 산이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참 귀엽다. 그렇게 신나는 마음만 가지고 춘향의 도시 남원에 도착했더랬다.

당시 광한루원의 한 곳. 왜 찍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둘레길이라고 했다. 그런데 초반 2~3시간을 등산을 했지 뭔가. 그렇게 가파를 줄 몰랐다. 힘들다는 산은 설악산이니, 치악산이니 하는 '악'산만 해당하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다. 등산을 조금 해봤다는 친구들은 척척 올라가는데 나만 헛구역질을 쏟아내며 꾸역꾸역 오르고 있었다. 거리는 저만치 차이가 나고, 흙먼지를 먹은 탓에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아직도 기억나는 이 배신감. 산은 언제나 그 모습으로 있었을 텐데, 단지 내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느껴지는 이 배신감은 쪽팔려서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친구들은 이미 앞서가고 있기에 '나는 이제 끝났소. 먼저 하산하겠소.'라는 말을 전할 수도 없이 그저 내 저질체력을 원망하다 보니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마을에 다다라 겨우 쉬었을 때는 정신이 몽롱해질 지경이었다. 조금 쉬면서 정신을 차리니 어차피 여기까지 올 텐데 산을 오르는 시간 내내 '힘들다'와 '그냥 내려갈까'하는 생각만 반복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 누군가는 이 시간 동안 '힘내자', '조금만 더 가면 개운하게 쉬겠지' 하는 긍정적인 생각만 했을 텐데. 


 왜 나는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을 가치있게 보내지 못할까. 어차피 할거 좋은 마음으로 해내야겠다. 겨우 체력과 마음을 추스르는 사이 체력 회복이 다 된 친구들은 걸음을 재촉했고, 나도 힘을 내어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이어지는 길은 오르막이 없다는 응원의 소리를 바탕으로 양쪽 밭을 사이에 둔 길고 긴 뚝방 길이 이어졌다. 이제는 함께 걸을 수 있겠다.

옛날 사진이라 화질이 좋지 않다

 세상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나를 한탄하고 내 안으로만 생각하는 중에는 나를 기다려주고 기운을 차릴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약한 사람'이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분명 다같이 힘든 데도 남의 힘듦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본인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건 어쩔 수 없이 몸이 그렇게 된다. 내가 아무리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해도 우리 몸의 숙명이 그렇지 않다. 힘들수록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이 본능이다. 체력의 한계점을 남들보다 높여야 용기를 줄 수도, 배려를 할 수도, 힘을 덜어줄 수도, 하다못해 희생이라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피해만 될 뿐이다. 나를 포함해 남까지 둘러볼 수 있어야 그때 삶의 가치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의 이유라든지, 인생의 목적이라든지 그게 뭐 특별한가.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신'하는 것. 그냥, 내 스스로 나 쓸모있는 애구나 '인정'하는 것. 이거면 되지 싶다. 누가 보면 에베레스트라도 다녀온 줄 알겠지만 고작 지리산 둘레길로 이런 깨달음을 얻다니. 힘든 자여 지리산으로 가라, 깨달음의 가성비를 챙기기에 지리산이 최고다. 


 끝이 없어 보이는 길을 지루할 틈 없이 걸었던 것은 지금 나에게 큰 에너지를 준다. 미처 지나친 아름다움을 포착해 서로 공유해 주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드는 시간이 주는 가뿐한 행복. 웃기고 웃어주며 힘이 되어주던 기억. 함께 걷던 길의 풍경과 냄새, 눈앞에 잔뜩 낀 날파리까지 생생한 추억 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기운이 난다는 것. 어떤 보양식도 이보다 효과가 좋진 않다. 당시에는 그 길을 걸으며, 엄마도 걸으면 좋아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리산을 오르는 것은 힘들지만 그쪽 길이 아니라면 이곳은 자연과 마을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포근하고, 곳곳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생활력이 엄마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줄곧 내 무의식에 엄마와 그 길을 걷는 모습을 저장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냥 떠났으면 될 것을 왜 이리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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