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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졍 Mar 26. 2021

인간에 대한 예의

-꼰대에게도 배울점이 있더라.

나의 아버지는 57년생. 군대에서 하사까지 지내신 뼈속까지 보수적인, 가부장적인 대한민국의 한 남자이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나의 어린 시절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은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 공부 돈 그런거 중요하지 않아. 사람이 되어야 해. 사람이."



그렇게 나의 어린시절은 아빠의 예의 범절,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하는 범상치 않은 이유를 들으며 성장했다.

처음엔 아빠의 그 말이 낯설었다.


밥을 먹을 때도 아빠와 엄마가 먼저 수저를 들어야 나도 먹을 수 있다는 점.

어른들을 보면 무조건 우렁차게 "안녕하세요." 

어른들이 칭찬해주면 겸손을 부릴 줄 알아야 하는 점. 

어른들의 말에 말대꾸를 감히 하면 안되는 점. 

등등등.


그 시절, 너무도 당연하게 따랐던 따를 수 밖에 없었던, 어른들의 칭찬에 그저 기분이 좋았던 순진했던 시절. 

자연스레 인간에 대한, 인간이 되어야 한, 인간으로서의 예의, 인간...이 정도의 감정을 배울 수 있었던 시절.



성인이 된 후 선택한 직업에서, 천직이라 믿고 학생들을 가르칠 때 조차

나는 그들에게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해. 너희와 나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라며 낭만 18세들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르쳤다.


흔히 지금으로 말하면 '젊은 꼰대질'을 한 것이다.

처음엔 충동사고가 많았다. 마그마같은 18세에게 예의를 바라는것, 인간대 인간으로서 감정을 컨트롤 하는 것. 그 자체야 말로 사건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존중을 하고 받으며 의지하고 애쓰는 관계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지금까지도 인간으로서의 관계 유지를 찰떡같이 해내고 있는 중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지키니 좋은 관계들이 오래 유지되고 생길 수 밖에 없음을 어른이 되어서야 아빠의 예의범절 교육의 참된 장점을 깨달았다. 



결혼을 하겠다 마음을 먹은 후 '시'자가 들어가는 그대들과의 관계에서도 나는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늘 가슴 속에 새기며 행동을 하고 상처를 씻고 넉넉한 웃음을 선사하며 지낼 수 있었다. 같은 부모이지만 앞에 '시'자가 들어가면 늬앙스부터 느낌, 감촉, 온도 등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그들도 인간임을 강조하며 그렇게 나는 느리게 느리게 감정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크게 열받거나 서운한 감정이 그네타듯 요동치지는 않았다. 이 또한 아빠의 범상치 않은 교육 덕분임을. 



어린 시절부터 새뇌당해 온 아빠의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하며, 인간의로서의 예의가 있다" 이 교육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 역시 없었을지도 모른다.


딱히,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킴으로서 뭔가 거창한 것은 없지만

적어도 먼저 화내지 않고, 말하기보단 듣기를 우선시 하며,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을 때 3초 느리게 말하는 부분 등 나만의 루틴으로 사람을 대한다. 그리 하다 보면 

한창 어른들 사이에서는 젊은 사람 치고 예의바른 사람이 되며,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젊은 꼰대가 되고, 가족들에게는 그저 착한 가족 구성원이 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넘쳐나게 된다.


굳이 성내고 열내며 울그락붉으락 할 필요 무엇있나.

예의를 지키면 적어도 상대방이 나에게 삿대질을 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두 발로 걸어다니니 인간이다 싶어서 예의를 갖추라는 것은 아니다. 정말 인간답지도 못한 것들에게는 똑같이 개무시를 날려주면 될 것을. 


보수적이고 꼰대같은 아빠에게 유일하게 받은 장점은 얼굴의 예쁨과 길다란 다리 길이도 아닌 그저 

살아가는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예의"였다. 인간다운 사람들에 대한 예의. 

그래서 난 칠십을 바라보는 어른꼰대에게 잘 하는 중이다. 그래도 아빠 덕에 지금까지 모나지 않은 인간으로 살아왔고 살 수 있었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꼰대들 때문에 한숨이 나오는가?

그러나 그 꼰대들에게도 배울 점은 있다. 

그런 점 없이 꼰대질만 하는 인간들에게는 예의 따위 줄 필요 없지만 조금 다르다면 약간의 예의범절은 누려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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