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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졍 Mar 30. 2021

위로의 가치

누구에게나 위로할 권리는 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위로를 받고 싶은 그런 날이 온다. 그런 날, 당연하듯 건네는 당신의 위로가 누군가에게는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삶의 특효약일지도 모른다. 거창한 말 한마디, 제스처, 느낌과 억양 따위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 무언가. 그것이야 말로 위로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유산을 하고 나서 사실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리나가 제일 큰 스트레스였다. 내 입으로 축하받을 내용을 알리는 건 쉽고 즐거운 일이나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상황과 결과를 알리는 것만큼은 어려운 과정이었다. 다행히, 가족과 회사 몇몇 분들에게만 알리면 되는 거였는데 그것마저도 나에겐 고통이었다. 


  남편은 울지도 못한 채 묵묵히 내 옆을 지켜주었다. 조용하게 묵묵히 소란스럽지 않게 옆에 있는 것이 그가 나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평소 조용하고 신중한 사람이기에 본인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나무 같은 사람이라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 떠올리면 그는 최선을 다해 내 감정선을 건드리지 않고 위로와 손길을 건네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큼 슬프고 나만큼 절망적일 텐데 그는 '너만 괜찮으면 돼'라며 연신 안심을 시켰다. 


  시부모님들은 '괜찮다. 너 몸 챙겨라. 네가 우선이다'라는 말씀으로 위로를 건네셨다. 임신을 알린 첫날 들뜬 목소리와 기뻐하던 억양을 알기에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덤덤했고 괜찮음을 강조하셨다. 아기가 우선이 아니라 나의 건강과 나의 마음이 우선이어야 하며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쉬고 있으라는 말씀을 하셨다. 오랜 세월을 사신 녹록함에서 나오는 위로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의 위로는 사뭇 달랐다. 난생처음 겪는 일에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눈에는 가득 찬 눈물이 그렁그렁 이었다. 그러나 그 가득 찬 물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그들 자신을 애써 달래고 있음이 느껴졌다.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가장 큰 위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매일 찾아와 점심을 먹여가며 나의 몸상태를 확인했고 일체 그 사건에 대해서는 서두조차 꺼내지 않았다. 



  당시에는 내가 가장 아팠고 슬펐고 당연시 위로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적어도 나는 엄마였으니까. 그래, 잊고 있었다. 아빠였던 사람에 대한 위로. 그에게 건네는 마음. 

 

  나는 그에게 위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로할 생각 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묵묵하게 회사에 출근하던 그 사람을, 웃으면서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몸은 어땠냐고 물어보는 그 사람을, 나는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렇게 그는 나만 위로하고 나만 걱정하고 내가 괜찮음을 확인하고 안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위로할 권리는 있다. 그 일을 겪고 두 사람 다 아팠을 것이고 속상했을 것인데, 왜 그때 나는 나의 감정선만 중요했던 것일까. 왜 그 사람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조금씩 미안해지고 있었다. 

  애써서 그에게 티 내며 위로할 생각은 없다. 지금까지도. 

  그때 건네지 못했던 위로는 다음에, 그에게 위로가 절실하게 필요할 때, 그때만큼은 내 감정선이 우선이 아니라 그를 더 우선시 여기며 묵묵하게 옆에서 건네야겠음을. 



  어쩌면 따뜻한 말 보다 밥 한번 먹자라는 약속보다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변함없는 묵묵함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이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위로할 권리는 있기에.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누군가가 건네 온 위로에 기꺼이 고마움을 느끼며. 나 역시 누군가에게 묵묵한 위로를 건네는 상황이 온다면, 온 마음 다해 그를 위로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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