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겨울 방학이면 제주에서 감귤 선과장을 운영하셨던 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뵈러 가곤 했었다.
가끔 외할머니를 모시고 바닷가를 산책할 때면 제주 앞바다의 반질반질 손바닥만 한 돌멩이 하나를 집어 오셨다. 왜 돌멩이를 주어 가느냐고 여쭈었더니 공기 좋고 맑은 바닷물을 먹은 돌멩이를 겨우내 익혀 먹을 동치미 위에 얹으려 하신다고 하셨다.
그래서였을까? 외할머니의 무동치미 맛은 시원하고 담백한 제주를 품은 맛이었다. 그렇게 제주 앞바다의 맑은 공기를 가득 담은 내 기억 속의 무동치미는 때때로 아버지를 위한 동치미 국수로, 때로는 새콤하게 익은 동치미 무를 적당한 두께로 채 썰어 참기름과 고소한 깨만 으깨 넣어 무쳐 무채 무침이 되어 밥상에 올랐다.
가끔 출출하다고 야식을 찾으시는 아버지에게 달큰한 고구마와 함께 입 안이 개운해지는 동치미 한 그릇을 챙겨 주시던 외할머니의 주름진 손길이 생각난다.
아마도 잠깐씩이지만 외할머니와 지내면서 유난히 무를 좋아하셨던 외할머니와 함께 보낸 까닭인지 이맘때가 되면 우리 집 밥상에는 외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무를 이용한 반찬들을 많이 챙기게 된다.
오늘 아침에는 시원하고 달달한 겨울 무로 아들이 좋아하는 생채를 만들며 추억의 손맛을 저만치 남겨두고 떠나신 외할머니가 참 많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