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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이 비워졌다는 건 마음이 채워졌다는 뜻이야

-따뜻한 식탁의 기억으로부터

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음식이란 건 결국,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쓰는 일이다.

그 시간이 곧 마음이고 사랑이다.”

– 신혜선, 『다정한 구식요리책』 중에서-


한 사람을 위한 밥상이란, 어쩌면 가장 단순하고도 깊은 마음의 표현인지 모릅니다. 부지런히 다듬은 채소, 말없이 끓여낸 된장국, 정성스레 지은 밥 한 그릇. 그 안에는, 말로 다 닿지 못할 마음이 천천히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밥상을 차려왔지만, 문득문득 그릇을 비우고 난 뒤의 풍경이 더 오래 마음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텅 빈 접시, 국물 한 방울 남아있지 않고 비워진 그릇, 그리고 식사를 마친 가족들의 조용한 웃음들. 그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만나 채워진 순간이었습니다.


엄마였고, 요리사였고,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한 사람으로 살아오며, 나는 늘 음식으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남자 친구와 이별을 하고 돌아온 딸이 위로받기를 바랄 때, 사랑을 말로 다 전할 수 없을 때, 심지어 미안함을 대신하고 싶을 때조차, 나는 말보다 먼저 냄비를 꺼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음식이 '노동'이라 했고, 누군가는 의무라 했지만 내게 음식은 언제나 ‘기다림’이었습니다. 세상이 아직 잠든 새벽, 혼자 부엌 불을 켜고, 조용히 칼과 도마를 꺼내는 그 시간, 그건 다른 이를 위한 시간이자, 동시에 나를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양파를 썰고 , 마늘을 다지고, 된장을 풀며, 나는 마음속 무언가를 끌어안고 달래고, 다시 꺼내곤 했습니다. 그렇게 부엌은 내 마음이 머무는 작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큰 딸이 오래도록 아토피로 고생하던 시절, 나는 엄마로서 무엇보다 절박했습니다. 피부에 좋다는 식재료들을 밤마다 컴퓨터에서 찾아다니며, 레시피를 눈으로 먼저 외우고 요리를 손끝으로 익혔습니다. 황토를 가라앉혀 만든 지장수는 물이 들어간 모든 음식에 빠지지 않고 사용했고, 속 열을 가라앉히고 염증에 좋다는 우엉은 삶고 볶고, 다져서 우엉조림, 우엉생채, 우엉 주먹밥, 우엉미트볼로 거듭났습니다. 독한 약 대신, 사랑으로 낫기를 바랐기에 내 손과 눈은 위시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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