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에피레터 키워드: 습관
여가 생활을 하면서 쉴 때는 그냥 푹 쉬기만 해도 괜찮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쉴 때도 가성비를 다 따져가며 쉴 때가 있다.
여가 시간을 채울 새로운 취미를 찾아 나설 때도 마찬가지다. 그 취미가 얼마나 재미있을 것 같은지를 가장 먼저 고려해 본 적은 별로 없다. 그 대신 ‘시간 대비 확실한 결과물이 나오는가’, ‘미래의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가’, ’부수입을 얻을 수 있는가’ 등등 설렘과는 거리가 먼 현실적인 조건부터 따진 적이 훨씬 많다.
그런데 남들의 말을 참고하여 얻은 취미 중 나의 여가 시간을 만족스럽게 만들어준 취미는 별로 없었다. 아무리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말로 추천받은 취미여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남들의 추천으로 떠나보낸 취미는 하도 많아서 목록으로 정리해 볼 수도 있다.
- 나를 떠나간 취미 (1) 뜨개질: 집중력을 기르기에도 좋고 생산적인 취미라고 소문이 자자해서 도전했으나 아무리 신중하게 떠도 코가 자꾸만 하나씩 없어져서 목도리 하나 뜨지 못하고 그만두다.
- 나를 떠나간 취미 (2) 기타 치는 법 배우기: 손가락이 너무 아프고 손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질 못해 답답해서 그만두다.
- 나를 떠나간 취미 (3) 새로운 요리법 배우기: 기대했던 만큼 맛있는 음식이 나오질 않아 그냥 늘 똑같은 요리만 하게 되다.
- 나를 떠나간 취미 (4) 아이패드 앱으로 그림 그리기: 그림 그리는데 도무지 재미가 붙지 않아서 그만두다.
이 취미들의 공통점은 누군가에게는 여가 시간을 보내기에 최고의 취미라는 점이다. 재미도 있을뿐더러 눈에 보이는 생산적인 결과물까지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취미는 나의 여가 시간에 들어오면 즐거움은커녕 답답함, 속상함, 스트레스만 불러일으켰다.
왜 나는 이렇게 생산적이고, 즐겁고, 재밌는 취미들을 내 삶에 들이지 못하는 걸까? 뜨개질로 직접 옷을 만들어 입고, 좋아하는 노래를 기타로 연주할 줄 알고, 직접 만든 요리를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내 것이 되지 못한 취미들을 보며 아쉬워하기만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모든 것을 꼭 능통하게 잘해야만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의 여가 시간이 늘 멋지고 생산적인 취미로만 채워져야 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다소 심심하고, 정적이고, 느긋한 시간으로만 채워진 여가 시간이라도 그것이 나에게는 진정으로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다면 누가 이를 비난하거나 평가할 수 있을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시간에도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며 멋진 모습만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된 이후로는 멋져 보이는 취미로 여가 생활을 장식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를 비교하는 순간이 예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그래도 나를 떠나간 몇몇 취미에 대한 미련은 아직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방 한구석에는 오래된 기타와 감았다 풀기를 수십 번 반복하느라 너덜거리는 실뭉치가 있기는 하다. 운이 좋으면 언젠가는 이런 취미를 진정으로 즐길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지금 나의 여가 생활을 채워주는 심심한 취미들에 대한 애정을 무럭무럭 키워가고 싶다. 책 읽기, 필사하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갖가지 생각을 끼적거리기 등등 정적이고, 특별하지 않고, 남들에게 자랑거리도 못되지만 나를 진정으로 편안하게 해주는 취미에 대한 애정을 말이다.
여러분은 어떤 여가 생활을 할 때 가장 즐거운지 궁금해요!
현의�
여가 시간마저 가성비를 따지고 싶은 마음이 너무 닮아있어 신기해요. 어떻게 보면 마케터의 직업병 같기도 해서 공감됩니다 ㅎㅎ
미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