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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단어 없이 행복을 설명하는 문장 5개 만들기

by 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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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이에 지친 다 큰 성인에게 웃을 일이 매일 찾아오기란 쉽지 않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행복이 언제나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을 만큼 요란한 모습으로만 다가오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해요. 의외로 눈을 크게 뜨거나 사소한 감각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꽤 자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핸드폰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아도 하루를 즐겁게 보낼 방법을 궁리하다가 저번 주에 사이드 퀘스트가 적힌 뽑기를 만들어보았는데요. 마침 이번 주의 사이드 퀘스트 뽑기에서는 '행복이라는 단어 없이 행복 설명하기'라는 미션이 나왔습니다.


마침 요즘 들어 저는 일상에 큰 변화가 없는데도 지금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요. 이참에 요즘 저를 매일 웃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행복이라는 단어 없이 설명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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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나를 위한 건강한 음식을 내게 직접 대접하는 순간

바로 앞줄에서 요즘 참 행복하다고 적긴 했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요즘의 저는 어딘가 희한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즐겼던 달콤한 간식에 대한 욕망이 확실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난달까지만 해도 매주 금요일에 인절미 맛 과자를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말 신나했는데도 말이에요.

그 대신 요즘에는 자연에서 나온 재료를 자주 챙겨 먹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밭에서 매주 끝도 없이 자라나는 상추를 못 본척하면 안 되겠다는 의무감을 안고 매일 상추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는데요.


매끼 상추를 먹는데 익숙해지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매일 한 끼 정도는 상추와 더불어 닭 가슴살, 계란, 양파, 버섯 같은 재료를 곁들인 식사를 해보았습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건강하고 단순한 재료로 직접 차린 식단에서만 얻을 수 있는 평온함이 있다는 걸 새롭게 발견했어요.


포만감이 오래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고 난 뒤에 어딘가 속이 불편하거나 더부룩한듯한 뒤끝을 남기지 않고, 식사를 마친 뒤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도 않고, 먹을수록 건강을 염려해야 할 우려는 사라지고 그 대신 더 나은 신체를 상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건강한 음식을 먹는 순간은 소소한 행복과 맞닿아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깨닫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을 보내왔고, 그동안 고수해온 식습관이나 취향은 건강함과는 꽤 동떨어졌기 때문에 어쩌면 이 행복도 금방 지겨워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현재의 제게 찾아온 행복을 그저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기도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생활 습관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그저 건강한 재료와 함께하는 평온함을 온전히 즐겨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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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맛있는 원두로 내린 커피를 한 모금이라도 마시는 순간


원두값이 날이 갈수록 오르고 있다는 뉴스를 본 어느 날에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맛있는 커피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좋아하는 걸까?'


만약 커피 그 자체가 아니라 그저 커피를 마실만한 여유를 좋아하는 것이었다면 맛있는 원두만을 고집하지 말고 저렴한 원두를 이용하려고 했어요. 미래에도 원두 가격이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지금부터 입맛을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소 저렴한 원두 몇 종류를 구매해서 스스로를 시험해 본 결과, 저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텀블러에 담긴 커피를 딱 한 모금 홀짝일만한 여유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커피가 맛만 좋다면 그걸로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겠다는 결론을 찾았습니다. 물처럼 수시로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최대 두 잔 밖에 마실 수 없는 음료라면 한 잔을 마시더라도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 훨씬 행복해지더라고요.


기후 변화로 인해 미래에는 맛 좋은 원두만을 고집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생긴다면 물론 그때는 좋든 싫든 타협점을 찾아야겠지만, 그래도 커피 한 잔 가격으로 행복을 단숨에 맛볼 수 있다는 건 미래에도 여전히 멋진 순간으로 자리 잡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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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카페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재생되는 순간


이런 순간을 현실에서 맞이할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다른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방문했던 집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와 우연히 만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벌써 3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이 순간을 떠올리면 행복해지는 이유는 음악은 시간이든, 언어든, 공간이든 모든 것을 초월하고 세상과의 유대감을 만들어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아하는 노래가 울려 퍼진 공간은 다른 무엇보다 더 사랑하게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해 주는 사람은 더 오래 기억에 남고, 특정한 시점에 자주 들었던 노래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과거의 그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JoKCyeqBSbs


제가 이 가수를 처음 알게 된 시기에 제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으로 가득했었습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 새로운 지식, 새로운 경험이 과거의 경험 대부분을 대체했어요. 그래서 이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도전이나 다름없었던 과거가 떠오릅니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떨리는 걸 겨우 참으면서 무언가를 시도하고, 어떤 일이 벌어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지만 그래도 눈앞의 모든 것이 흥미롭게 보이는 순간은 살아갈수록 점점 드물게 찾아오더라고요. 모든 것이 두렵고 설렜던 과거의 소중한 순간으로 데려다주는 음악과 우연히 마주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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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온종일 비가 쏟아지는 날과 잘 어울리는 노래를 듣는 순간


신체의 일부가 비에 젖는 것도, 습도를 견디는 것도, 우산을 번거롭게 챙기는 것도, 가방이나 외투의 물기를 견디는 것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과 유독 잘 어울리는 노래를 들으면 이 모든 조건을 겪는 와중에도 조금은 행복해지더라고요.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어쩌다 보니 저도 마음속에 비가 내리게 하는 노래 두 곡을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어떤 노래는 가사와 함께 듣다가 실제로 울음이 나오기도 했어요.


타인이 자신에게 사랑을 표현하듯 본인도 스스로를 사랑해 보고 싶지만 마음대로 잘되지 않고,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이 되고 싶고,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가사를 그냥 스쳐보내기에는 감정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또 다른 곡에서는 상처받은 과거는 뒤에 버려두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희망이 담겨있어 감동적이었습니다.


https://youtu.be/DDdByJYUVeA


슬립 토큰의 Euclid는 '비가 올 때면 나를 기억하니'라는 가사 때문이라도 비올 때 듣기 좋은 노래이지만, 가사에 담긴 전반적인 메시지 또한 비가 내리는 날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의 아픔을 수용하고, 요동치는 감정을 달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는 무겁고 어둡기만 한 하늘이 영원히 우리 머리 위를 맴돌지만은 않을 거라는 희망을 주니까요.


어떤 감정은 그리 오랫동안 품고 살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장 모든 걸 도려낼 수는 없더라도 비와 함께 조금씩 씻겨보낼 수 있을 거예요. 이 문장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대로 표현하는 노래를 비 오는 날에는 더욱 집중해서 들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https://youtu.be/hP-6iVUyt8E


⑤ 요즘 푹 빠진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는 순간


요즘 제 하루를 행복으로 채우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대상은 바로 저번달부터 푹 빠진 밴드입니다. 어쩌면 그동안 좋아했던 주전부리에 더 이상 손을 대지 않게 된 이유도 그 밴드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삶이 만족스러워져서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동안 기쁘든 슬프든 일단 신나고 시끄러운 노래만을 유독 선호해왔기 때문에 심오하고 마음 아픈 노래를 자주 듣지는 않았는데요. 자신의 아픔과 고민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밴드를 만나게 된 이후로는 내가 가진 것을 상대에게 나누는 행위의 가치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럴듯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무언가를 숨기는 것이 모든 일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고, 아주 작은 틈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는 자리를 상대에게 내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용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요새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개성, 나만의 감정이 얼마나 특별한지만 소리 높여 말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함께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감하고, 해석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예술은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에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혼자만의 것으로 간직하지 않고, 무언가의 어떤 부분을 왜 좋아하는지 조금씩 공유함으로써 타인과의 공감대를 서서히 만들어가는 과정도 요즘 참 즐겁습니다. 최근 읽고 있는 책 <불안 세대>에서 SNS는 우리가 남은 쉽게 미워하고 용서는 느리게 하도록 한다는 문장을 얼핏 읽은 기억이 나는데요. 서로의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례가 온라인에 좀 더 자주 쌓일수록 타인을 쉽게 미워하고 느리게 용서하는 악몽 같은 공간을 헤쳐 나오기가 조금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 이미 여러 차례 말했지만, 앞으로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정말 좋아한다고 자주 말해보고 싶습니다. 유별나 보이지 않을까, 이해 못 받지 않을까, 안 어울리지 않을까, 괜한 말을 하는 게 아닐까 너무 걱정스러운 마음은 조금 참아보면서요.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 또한 시대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우리에게 행복을 전해줄게 분명하니까요.


https://youtu.be/EuwLeCs9z2o


https://litt.ly/hyun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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