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음일기
"좋다"라는 말은 좀처럼 방방뛰는 일이 적은 나에게는 투머치인 단어이고 "싫다", "별로다" 류의 말은 가뜩이나 시니컬한 나에게 더욱 무거운 에너지를 쌓는 느낌이다.
나에게 딱 맞는 정도는 "괜찮다" 이다.
아-주 좋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내 기분과 상태를 너무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 민망하고, 싫다고 이야기 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것.
"괜찮다"는 내게 나쁘지 않은, 마법같은 단어이다. 어떤 날은 "좋다"와 동급의 힘을 가지기도 한다.
주변에 있는 극강의 F형 친구들처럼 호불호를 온몸으로 주장하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나는 내 기분을 날 것 그대로 내보이는게 부끄럽다.
요즘따라 일상에 온갖 것들이 자질구레 널부러지고 뒤엉켜 바쁘고 두서없는 날이 많다. 쌓이기만 하고 치워지는 것은 없으니 매사에 화가 솟구치거나 전부 갖다 버리고 싶은 마음만 굴뚝이다.
"싫다"고 얘기하기는 정말 싫지만 "좋다"고 말할 게 하나도 없는 요즘인 셈이다.
더 이상은 이렇게 나를 좀 먹는 에너지만 쓰고 살 순 없을 것 같아 앞으로 하루에 하나씩 괜찮은 조각들을 모아보려고 한다. 일상에서 꽤나 맘에 들었던 순간, 괜찮았던 조각들, 내가 정신없이 두고 미쳐 돌보지 못한 조각들을 찾아보려 한다.
일단 오늘의 괜찮음은
이런 결심을 하고 이렇게 일기를 쓴다는 것.
달리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움직였다는 것.
이불 위에서 꼼짝없이 고민만 하지 않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는 것.
나왔더니 날씨까 꽤나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는 것.
새로 생긴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은 것.
괜찮았던 포인트들이 꽤 많아서 정말 괜찮은 날을 보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