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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은 Nov 03. 2020

습지의 사랑

에디터의 필사노트

책: 칵테일, 러브, 좀비

지은이: 조예은

읽은 날: 201103 화


EP2 <습지의 사랑>


P 44 헐레벌떡 멀어지는 뒷모습을 볼 때면 증오와 부러움, 그 두 감정이 함께 찾아왔다. 자신의 영역에 멋대로 침범한 이들을 쫓아내고 싶다가도 발목을 붙잡고 가지 말라 외치고 싶었다. 장난은 짧았지만 외로움은 길었으니까.

내가 자주 느끼는 양가감정도 이런 걸까? 실망스럽고, 싫다가도 내 곁에서 멀어지는 건 싫은 감정. 앞으로 이런 마음을 '외로운 물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야겠다. 얼른 외로운 물의 마음을 떨쳐내자.


P 45 물의 공백을 메운 건 대부분이 생각들이었다. 시간이 많아지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우울이 찾아들기 마련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의 정신 상태가 온전치 않았을 땐 대부분 혼자인 시간이 많았던 시기였다. 혼자였다. 혼자 아무 생각을 했다. 아무 색이 없던 생각은 점점 어두운 색으로 변했고, 곧이어 남아 있던 밝은 색을 빼앗았다. 감당 안 되는 무게의 생각들에 짓눌려 내 몸이 잠식되는 경험을 했었다.


P 49 그러자 누군가는 씨익 웃었다. 퍼석한 입술과 입술 사이의 입꼬리가 그리는, 부드러운 곡선을 보니 (중략) 기분이 들었다.

행위를 부가설명하는 방식. 구체적인 묘사가 멋지다.


P 49 얼마 지나지 않아 맨발이 흙을 밟는 소리가 났다. 삐걱이는 소리는 찬찬히 멀어졌다.

마찬가지로 대상이 멀어지고 있음을 청각적으로 설명했다.


P 52 물은 결국 그 애를 일단 숲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중략) 애초에 불릴 일이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 이름이 있어야, 비로소 생도 있다.


P 61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매일 이걸 보러 오는 거야. 나를 잊지 않으려고. 내 이름, 내 얼굴, 아마도 내가 죽었을 때의 나이, 그런 거. 알아봤자 별다를 것도 없지만, 조금이나마 나를 덜 희미하게 하는 것들이니까."

우리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들. 이름, 육체, 나이. 나의 존재를 선명히 느끼게 해주는 것들. 증명해주는 것들.


P 62 이영. 마음이 두개라 매끄럽게 발음되는 이름이었다. 숲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떤 충동으로 이영을 불렀다. "이영."

물이 처음으로 숲을 이름으로 불렀다. 두루뭉술했던 관계가 곧 가까워질 것이란 징조다.


P 63 "없으면 다시 만들면 돼. 네가 누구인지 이름을 정하는 거야."

이영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물에게 이름을 정하자고 제안한다. 물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셈.


P 63 "여울은 어때? 네가 사는 저 하천, 여울목이라고 부르더라."

이영과 한 쌍인 이름. '둘 다' 이름에 이응이 '두 번' 들어간다. 게다가 여울은 그 지역 하천 이름이다. 존재가 분명했던(숲에서 목숨을 잃은 소녀) 이영에 비해, 여울은 본인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 하는 존재였다. 여울은 그간 여울목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이들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존재일 수도 있겠다. 마을의 수호신이거나. 결국 이영의 시체는 여울에 의해 발견될 수 있었던 걸 보면. 어디까지나 신화 얘기를 좋아하는 내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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