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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Apr 08. 2024

모이고 흩어지는... 구름 같은 인연


욕심 없이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

흐르는 물처럼 살기를 바라고, 소리 없이 오고 가는 바람처럼 살기를 원하는데 안된다. 모이고 흩어지는 구름처럼 살기를 바라는데 그것도 어렵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은 지나친 인간의 욕심일 것이다. 싹을 틔우고 잎을 기르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떨어져 낙엽이 되어 흙이 되는 것은 자연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미련을 가지고 후회하며 살다 간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신경 쓰고 걱정하며 안달하고 괴로워하다 간다. 잘못된 길을 알고,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요행을 바라고 산다.


오랜만에 숲 속을 걸어본다. 질척거리던 오솔길이 햇빛과 바람에 적당히 말라서 걸을만하다. 아직은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있지만 완연한 봄기운이 맴도는 숲이다. 지난가을에 옆으로 누운 풀들은 새봄을 꿈꾸고 있다. 숲은 아직은 황량해 보이지만 봄을 향한 희망이 보인다. 나무들의 움이 한껏 부풀어 휑하던 숲이 나날이 꽉 차서 건너편 숲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머지않아 파릇파릇한 이파리가 나오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설렌다.


의 봄은 게으름뱅이라서 5월이나 되어야 기지개를 켜며 온다. 워낙에 겨울이 길기도 하지만 겁이 많은 봄은 겨울이 가지 않고 겁을 줄 때마다 움츠리다 보면 여름이 오기 바로 전에 잠깐 왔다 간다. 지난겨울에 눈이 얼마 안 오고 별로 춥지도 않아 봄이 일찍 오려나 했는데 오산이었다. 1월 중순에 기록적인 추위로 사람들을 놀리더니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내린다. 꽃이 야 할 때인데 3월, 4월 상관없이 아무 때나 봄눈이 내린다.


눈이 와도 오래 머물지는 않지만 눈이 오면 다시 겨울로 돌아간 것 같아 괜히 신경이 쓰인다. 눈이야 하늘이 하는 일이니 불평이 통할리 없지만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다. 고국에서는 온갖 꽃이 만발하고 낙화하는데 아직도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처량하다. 그래도 이렇게 나와보니 봄이 보인다. 우중충해 보여도 세상은 달라졌다. 계곡물은 이제 녹아서 가고 싶은 곳을 향해 힘차게 흘러가고 있다. 남쪽나라에 갔던 기러기들이 하늘을 가르며 시옷자를 그리고 날아오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봄의 시작이다. 아니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봄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싱그러운 공기가 바람 따라 숲을 채운다. 긴 호흡을 하며 봄을 마셔본다. 이름 모를 새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짝을 부른다. 최상의 고운 소리로 부르고 귀 기울이며 인연을 찾는다. 인연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생물들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인연을 만나지 못해 기다리고 인연을  찾아 헤매고 인연이 맞지 않아 헤어지고 만나고 한다.


마음대로 만날 수 없고, 헤어질 수 없는 것도 인연이다. 오늘 남편과 이 숲을 걷는 것도, 걸으면서 만나는 나무와 풀과 계곡도 인연이 없으면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인연을 따라 살고, 수많은 인연 때문에 행과 불행이 엇갈리며 웃고 운다. 계곡물은 따라 걸어본다. 어디로 가는지 급하게 간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바람이 분다. 훈풍이 불어 아름다운 봄소식을 전해준다. 망설이다 나온 산책인데 나오니 신천지를 구경한다.


집에서 할 일을 미루고 앉아 핸드폰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 훨씬 좋다. 봄이 오지 않는다고 투덜댔는데 숲 속에 이미 와 있는  봄을 만난다. 자연은 자연이 할 일을 열심히 하는데 봄이 온 줄도 모르고 봄이 언제 오나 어리석게 하늘만 보고 있었다. 눈이 녹은 양지바른 곳에 파릇파릇한 것이 보인다. 머지않아 숲 속의 민들레가 봄을 활짝 열을 것을 생각하니 좋다. 이른 봄에 나오는 민들레를 살짝 삶아 초고추장에 무쳐 먹으면 추운 겨울에 나갔던 입맛이 돌아온다.


민들레가 나오기 시작하면 산나물도 앞뒤를 다투며 세상구경을 나온다. 겨우내 땅속에서 봄을 가꾸던 산나물이 세상에 나오면 우리들의 손길도 바빠진다. 하루 먹을 만큼만 뜯어서 깨끗이 씻어 삶아 무쳐먹으면 고향의 맛이 난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열심히 따다가 먹고 얼려놓고 채소가 귀한 겨울에 꺼내어 녹여서 볶아먹었는데 그것 또한 욕심이다. 하루 먹을 만큼만 가져다 먹고 다음날 또 가서 뜯으면 된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어 있으면 더 갖고 싶고 쌓아놓는다.


하나둘 모으고 쌓다 보면 나중에는 그 모든 것들이 무거운 짐이 된다.  마음도 가볍게 몸도 가볍게 욕심 없는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가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앞으로 간다. 눈이 녹은 오솔길을 빠져나와 평평하게 잘 가꾸어 놓은 산책로를 걸어본다. 양쪽절벽에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있고 절벽 위에는 또 다른 산책로가 있어 사람들이 걷는다. 손을 들어 눈인사를 하고 스쳐 지나간다.


오늘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는 것이기에 아주 작은 것들도 소중하다. 새나 다람쥐나 하다못해 개미나 거미도 인연이 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삶은 인연의 연속이고 인연을 가꾸며 산다. 세상에는 바라보는 인연이 있고, 지나치는 인연이 있다. 어깨를 스치는 인연도 있고, 함께 동행하는 인연도 있다. 크도 작은 인연들과 좋고 나쁜 인연들이 얽히고설켜 세상을 만들며 산다. 손익을 따지지 않고 먼저 주고,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는 인연을 만들면 좋겠다. 지난겨울 세찬 바람에 떨어진 솔방울이 산책로 굴러다닌다. 산책로에서 만난 작은 솔방울 하나도 소중하다는 생각에 다시 바라보며 집으로 향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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