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야 하는 것을 모르고 쌓기만 한 세월 이제는 허물어야 할 시간 사랑도 미움도 비워야 하는 시간이다 언제부터 이어진 세월인지 기억조차 없는데 비우고 버려야 할 시간이 온다 하나둘 쌓은 성이 커다란 돌덩이가 되어 들지 못하는 짐이 되어 어깨를 누른다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노을이 되어 가벼운 먼지가 되어 소리 없이 사라져 가는 존재 어제의 삶은 찢어지고 없어진 종이 하얀 백지에 그림조차 그릴 수 없는 시간이 되고 텅 빈 머릿속에는 잃어버린 말들이 잠자고 있다 버리고 비워야만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 오늘을 담는다 내일이면 비워야 할 마음 한 조각 흘러가는 구름에 추억하나 그리움하나 실고 바람 따라 세월을 품에 안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