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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l 12. 2024

 더위를 식혀주는... 텃밭 채소 비빔밥


날씨가 너무 더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차라리 추우면 옷을 껴입고 벽난로에 장작이라도 때면 훈훈해지는데 더워서 갈 데가 없다. 쇼핑몰은 시원하고 좋지만 그곳에 하루종일 있을 수도 없고 수영장에 가서 놀다가 나오면 땀이 주르르 흐른다. 여름을 기다렸는데 며칠 계속되는 폭염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텃밭에 자라는 작물들이 너무 더워서 축 처져있다. 자주 물을 주지만 더위에 축 늘어진 모습이 안쓰럽다. 물을 먹고 자라는 연한 채소들인데 걱정이다. 예쁘게 자라는 것을 보면 사랑스러운데 이렇게 날이 덥거나 추우면 신경이 쓰여 걱정이다. 몇 개 안 되는 작물을 잘 자라나 들여다보고 자식처럼 아침저녁으로 보살피다 보면 여름이 즐겁게 지난다. 물값이 더 들겠지만 쑥쑥 자라 밥상에 올라와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을 생각하면 정성을 다해 보살펴야 한다.


오이가 제법 자라 꽃을 피우고 새끼손가락만 한 오이를 달 서있는 것을 보면 정말 깜찍하고 귀엽다. 그중에 오이 하나가 기둥 뒤에 숨어서 한 뼘 정도 자라 있는 게 보여서 깜짝 놀랐다. 작물들은 농부들의 발자국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처럼 오며 가며 손질해 주고 물 주고 예쁘다고 칭찬하면 더 잘 자란다. 작물 자라는 것을 보면 마음이 평화롭다. 깻잎은 해가 지면 이파리를 오므리고 다소곳이 서있다. 어찌 그리 해가 지는 것을 아는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데 저녁이 되면 기도하듯 몸을 모은다. 고추는 아직 그동안 추워서 키가 자라지 못하고 있지만 하얀 꽃이 하나둘 피고 있다. 땅에다 몇 번 심었는데 잘 자라지 않아 화분에 심은 뒤로는 나름대로 잘 자라는 고추가 더위를 이겨내고 잘 자라면 좋겠다.


지난겨울에 단호박을 사다 먹고 호박씨를 말려 두었다가 봄에 밭에 심었는데 몇 개가 나와서 자라고 있다. 오래전 부모님이 오셔서 남쪽으로 향한 땅에 호박을 심었는데 어찌나 잘 자라는지 신기해서 사진을 찍은 기억이 난다. 파는 일찍부터 세상구경을 한다고 봄이 되자마자 나왔는데 이제는 자두만 한 커다란 씨를 잔뜩 물고 서있다. 꿀벌들이 좋아라 하며 꿀을 빨아 나르느라 바쁘다. 올해는 심지도 않은 열무와 유채가 풍년이다. 작년에 떨어진 씨가 혼자 자라서 열무김치도 해 먹고 쌈도 싸 먹고 살짝 삶아서 된장국도 끓여 먹으니 너무나  맛있다. 지난 주말 며칠 집을 비우고 여행을 다녀왔더니 잡초들이 덩달아 신이 나서 자란다.


개망초와 유채꽃이 서로 봐달라고 활짝 피어 바람 따라 흔들린다. 장미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하는데 여전히 꽃은 잘 피우고, 어디선가 날아와 뿌리를 내린 노란 금화는 온 정원을 환하게 장식해 준다. 오래전에 전나무 하나가 죽어 나무를 베어버린 땅에 친구가 열심히 가져다주는 다년생 꽃씨 덕분에 동네가 환하다. 십자꽃과 마가렛이 하얗고 빨갛게 피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려서 본다.  그리고 꺽다리 리꽃은 열심히 자라고 있는데 머지않아 노란 미색 꽃으로 벌들을 유혹할 것 같다.

작년에 무성하게 피었던 코스모스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땅에 떨어진 씨가 바람에 날아갔는지 아니면 새들이 먹어버렸는지 코스모스가 없으니까 조금 아쉽다. 그래도 올해는 몇 년 동안 도도하게 한두 개의 꽃만 피던 작약이 열댓 개의 꽃을 피우며 시들어간다. 그 옆에 있는 해당화는 작약과 함께 피더니 작약이 시들으니까 덩달아 시든다. 새들의 놀이터인 전나무는 더없이 굵어지고 솔방울을 꽃처럼 매달고 서있다. 50살이 넘은 나이인데도 허리도 굽히지 않고 굳건히 하늘을 향해 서있는 전나무가 참으로 믿음직하다.


뒷문 옆에서 자리를 잡고 터줏대감 노릇을 는 앵두나무는 올해는 쉬고 싶은지 꽃도 몇 송이 지 않아서 앵두도 없이 이파리만 무성하다. 꽃을 피우며 건재함을 보여준 사과나무는 사과를 몇 개나 달았는지 이파리가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봄이 봄 같지 않고 오지 않을 것 같은 여름이 갑자기 오더니 이렇게 뜨거워 작물도 사람도 모두 놀란다. 세상에 산이 나고 홍수가 나고 허리케인과 토네이도가 오고 간다. 하루도 아무런 일없이 지나가지 않는 인생살이이지만 텃밭에 자라는 작물들을 보고 있으며 근심걱정이 모두 사라진다. 틈틈이 물을 고 다독이는 손길에 자라는 작물들이다.


텃밭 가꾸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텃밭이 주는 기쁨은 참으로 많다. 보는 즐거움과 기르는 즐거움 그리고 먹는 즐거움을 주는 채소들이다. 오늘은 날도 덥고 하니 텃밭에 자라는 채소로 비빔밥이나 해 먹어야겠다. 엊그제 친구가 가져다준 싱싱한 마늘종을 살짝 데쳐 자르고 깻잎을 잘게 썰고 상추와 유채 이파리 송송 썰어 고추장 한 숟갈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넣어 비벼 먹으면 맛있는 점심이 될 것 같다. 계란 프라이 하나 더 얹으면 비빔밥 꽃이 활짝 핀다.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자칫하면 입맛이 떨어지는 여름 더위에 비빔밥이 최고다.

욕심 없이 자라는 자연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만난다. 걱정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저마다의 할 일을 하며 자라는 채소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 열심히 살고 미련 없이 떠나는 자연이 주는 교훈을 본받으며 더운 하루 잘 견뎌보자.  예찬으로 뜨거운 여름 더위를 이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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