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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ertas Dec 12. 2019

식량주권론 비판

출처: http://www.mafra.go.kr/rice/01 (현재 URL 접속 불가).


우리나라에서 쌀값만큼 분노를 사는 논쟁거리를 찾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시위 현장에서도 쌀값의 “폭락”을 돌이킬 것을 외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도 쌀값 하락을 반대하는 시위 중에 일어났다. 이런 사건들로부터 볼 수 있듯이 WTO의 쌀 관세화와 궁극적 관세 폐지에 대한 저항은 매우 크다. 농민에 의하면 쌀값은 “개밥보다 싸고” 이대로 간다면 그들은 파탄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이를 보는 외부인은 의아해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쌀값은 일반적으로 국제시세의 4~5배이었고 몇 년 전 “폭락” 와중에도 여전히 국제시세보다 월등히 높은 가격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쌀 소득 보전 직불금만 2019년에 1조 561억 원(고정/변동 직불금의 합계) 지급되었고 전체 직불예산 합계는 2조 5956억 원이었다*. 그 외에도 정부의 최저가격 보장, 보험 혜택, 수자원 사용을 위한 시설 제공 및 비용 절감, 법적 규제와 같은 수단으로 우리나라 농민은 다른 산업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보호를 받아왔으나 그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른다.


원래 WTO 가입과 동시에 수입금지와 비정상적으로 높은 관세는 철폐해야 하지만 20년 동안 WTO의 관세화 규정 유예로 인해서 40만 9천 톤의 쌀 쿼터 이외에는 쌀 수입이 금지되어있었다가 2015년부터 WTO 규정상 최대허용 수치인 513%의 관세를 적용해서 관세화를 실시했다. 하지만 농민을 포함한 국민 대부분은 이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다른 보호 무역 정책과 마찬가지로 쌀을 보호하는 것은 국내의 생산자에게는 이득이지만 소비자에게 손해이다. 쌀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지만, 쌀은 여전히 국민의 주식(主食)으로 수요 탄력성이 낮은 편이다. 쌀 소비량은 소득 수준에 따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쌀 가격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것은 소비자들로부터 인두세(人頭稅)를 몰래 거두는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쌀 보호 무역을 주장하는 측은 식량주권론, 가격 안정, 농토 회복의 어려움, 농민에게 미칠 경제적 영향 등 이유로 반박한다. 그들은 세계 곡물 시장가격 폭등과 다른 국가들과 기업들의 담합으로 인한 가격 상승으로부터 우리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국내 식량 재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자세히 파헤쳐본다면 그 기반이 약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외 대기업들과 다른 국가들이 우리나라 시장에 쌀을 덤핑하여 우리나라의 쌀 생산 능력을 파괴한 후 우리에게 비싼 가격에 쌀을 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설령 이러한 시도가 있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이 저지할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전 당시 세계 쌀 최대 수출국이었던 태국이 이런 정책을 시도했었다.


당시 태국 정부는 농민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막대한 양의 쌀을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사들였다. 태국 정부는 수출량 감소로 인해 쌀 가격이 오른 후 농민으로부터 산 쌀을 팔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 정책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으로 전혀 합리적이지 못하다. 쌀은 석유가 아니다. 쌀은 인류 절반의 주식(主食)으로 전세계 많은 국가는 이미 쌀을 재배하거나 큰 어려움 없이 재배를 시작할 수 있다. 실제로 다른 생산자들이 수출량을 늘려 태국은 1등의 자리를 빼앗겼고 쌀 가격은 오르지 않았다.


막대한 시장 왜곡에 걸맞게 막대한 낭비가 발생했다. 태국의 농산물 구입 정책의 시행에서 부정부패가 끊임없었다. 구매 과정에서 농민이 사료용 쌀을 식용 쌀로 속여 파는 행위, 해외에서 쌀을 밀수해서 태국산으로 속여 파는 행위, 쌀의 양을 속이는 행위 등 농민과 태국 정부 모두 비리가 극심했다. 결국, 태국 정부 재정에 심각한 위기가 오게 되었고 다른 정치적 위기와 겹쳐 2014년 5월에 쿠데타가 일어났다. 2023년 2월 현재까지 태국은 실질적 군부 독재정권 하에 있다. 태국의 당시 총리 잉락 친나왓(ยิ่งลักษณ์ ชินวัตร)은 탄핵당하였고 그녀는 쌀 정책에 대한 재판을 피해 현재 해외 망명 중이다.


국제시장에서 쌀값은 변동이 심하고 일부 국가들은 시장가격 조작을 시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 쌀 시장은 국제시장보다 규모가 작은 동시에 비슷한 기후 조건의 영향을 받으므로 공급량과 가격의 변동이 심하다. 동남아시아에서 태풍이 발생하더라도 미국 쌀 생산은 영향을 받지 않지만, 태풍이 우리나라를 지나간다면 전국이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 국내 생산을 유지함으로써 쌀 공급을 안정시키는 것보다 차라리 더 안정적인 세계시장에 의존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1년에 한 번 밖에 수확이 되지 않는 우리나라보다 1년에 3번씩 수확할 수 있는 적도 국가들, 그리고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여서 북반구의 식량 재고가 최저일 때 수확하는 남반구에서 수입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다. 또한, 선물시장(先物市場)을 통해 쌀 생산자들과 계약을 맺어 계약 기간 중 정해진 가격에 쌀을 구입한다면 더욱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 이것은 쌀뿐만이 아니라 모든 농산물이 마찬가지이다. 전략비축을 구성할 수도 있다. 전쟁의 발발이나 코로나 당시처럼 무역의 흐름이 방해받는 경우에도 국내 생산보다 식량을 비축해 두는 것이 더 효과적인 대안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이미 공공비축 제도를 통해 쌀, 밀, 콩을 비축해 둔다.


외국의 담합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이들의 주장에는 자기모순이 담겨있다. 존재하지 않는 외국의 담합에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그런 담합이 발생할 경우보다 높은 가격에 쌀을 사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큰 규모의 시장이 갑자기 수입을 허용한다면 국제시세가 폭등할 것이고 이때 이미 쌀 생산 능력이 없어진 우리나라의 국민은 울면서 겨자 먹기로 훨씬 비싼 가격에 쌀을 사야 한다는 반박을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현실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


국내 쌀 시세를 국제시세와 비교해본다면 과거 국제 곡물 시장가격의 가장 심한 “폭등” 당시의 최대가격도 우리나라의 가장 심한 “과잉공급”으로 인한 최저가격보다 상당히 낮았다. 설령 국제 가격이 현재 국내 가격보다 높아지더라도 이때 농경지를 다시 경작하는 것이 어려워 생산량을 증가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는 미약하다.


농경지 면적을 늘리지 않고도 외국에서 이미 사용하는 효율적인 재배 기술을 도입한다면 생산량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 또한, 과거에 구식 트랙터 하나로 새로운 경작지를 일구기 어려웠을지 몰라도 수요만 있다면 지금의 기술로는 어렵지 않다. 만약 농경지가 다시 필요하다면 현대 장비와 기업의 자본이면 충분히 늘릴 수 있다.


실제 정부 정책을 관찰해본다면 농업 정책의 목적은 국민의 식량 주권이 아니라 순전히 농민의 이익을 증대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쌀 “과잉공급”을 타개하여 가격을 높게 책정하려는 정책은 누가 보더라도 생산자를 위한 정책이지 소비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다.


국가의 진정 목표가 식량 주권이었더라면 가장 효율적으로 가장 많은 양의 농산물을 가장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생산자 간 가혹한 경쟁과 규모의 경제를 유도하고 첨단 기술을 도입해서 덴마크와 같은 농업 강국이 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주된 관심사는 저렴하고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업 보호 정책의 실제 목적은 농민이 수천 년 동안 소망해왔듯이 자신의 땅에 농사를 지으면서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쌀 개방 정책이 사회 전반적으로는 이득이어도 농민에게 타격이 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 농민은 결코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다. 농업 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농민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이고 농촌 지역은 도시지역에 비해 매우 가난하다. 그리고 농민은 대부분 소규모 자작농으로 농업보호의 혜택은 대부분의 농민에게 비교적 균등하게 분배된다.


 보호에는 경제적인 측면도 있지만, 정서적인 측면이 매우 강하다. 경제적으로 우리나라의 농업 구조는 엄청나게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1940년대에만 해도 자신의 땅을 소유하고 하루에 쌀밥  끼를 먹는 것이 꿈이었던 농민의 갈망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당시 대부분 농민은   평조차 없는 소작농이었고 대지주의 횡포에 시달리며 굶주린  살아갔다. 아직도 젊었을  보릿고개 위에서 쌀만을 꿈꾸시던 노인들께서 살아계신다.


우리나라에서 “농사”라고 할 때 과수원에서 사과 재배를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라고 하면 논에서 쌀을 재배하는 것을 떠올린다. 그만큼 수천 년 동안 농민의 생존을 좌지우지한 쌀은 경제적인 의미 이상으로 농민 정체성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바나나와 오렌지 같은 작물들을 결국 개방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과일은 사치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쇠고기도 마찬가지로 광우병과 겹쳐서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켰지만 결국 무역 장벽을 철거했다. 하지만 쌀만큼은 끝까지 버텨왔다. 쌀은 바나나 같은 이국적인 사치품도 아니고 과거에는 너무 귀했던 쇠고기보다도 농민의 꿈이자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개방은 농민에게 큰 피해를 줄 것이지만 보호 정책은 매일 더 큰 피해를 주고 있다. 단지 그 피해자들이 항의하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부담이 여러 피해자 사이에 분산되어 있어 다른 부담에 비해 작아 보여 소비자가 피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민은 경운기를 몰고 도로를 막으면서 시위를 한다. 그러나 쌀을 살 돈이 없어서 아이들이 굶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을 뿐 시위하지 않는다. 그녀는 월세, 병원비, 아이들 학원비, 남편 술버릇 등 쌀값보다 훨씬 큰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데다가 쌀값이 인위적으로 부풀려졌다는 것을 모른다. 쌀값이 5배 떨어진다면 그녀의 생활고는 줄어들겠지만, 여전히 삶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굶거나 먹고 싶은 만큼 먹지 못하는 날의 수는 줄어들 것이다. 그녀와 같은 쌀의 소비자는 쌀의 생산자보다 수가 훨씬 많다.


하지만 그들은 침묵한다. 보호 무역의 고통은 많은 소비자에게 분산된다. 높은 가격으로 인해 소비자 한 명이 느끼는 고통은 경쟁에서 밀려나면 생계를 잃을 수 있는 생산자 한 명의 고통에 비하면 작다. 또한, 소비자들은 외국과 가격을 매일 비교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높다는 인식이 약하다. 이에 더해 국내 생산자들은 입장을 널리 알리기 위해 큰 노력을 하고 반대하는 견해를 이기적인 자본주의 대기업의 수작이라고 먹칠한다. 그래서 국민은 관세장벽과 억압적인 수입 쿼터에 비난의 손가락을 가리키지 않는다.


일부 보호 무역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보호 무역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한 끼 식사가 아무리 비싸도 맛있는 요리를 든든히 먹을 수 있는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다. 보호 무역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빚과 저임금에 시달리면서 한 푼 한 푼 아껴 쓰는 사람들이다. 농업 보호의 가장 큰 피해자는 농민을 착취할 기회를 빼앗긴 대기업과 대지주가 아니다. 농업 보호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음식을 남기는 것이 아깝다며 다른 식구들이 먹다 남은 밥을 모아서 먹는 어머니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바나나가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부잣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 중 돈을 벌면 본인은 맛보지도 못한 바나나를 아이들에게는 사줄 수 있다는 상상을 하던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현재 바나나를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소득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쇠고기를 매일 구워 먹는 것은 엄청난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것은 미국 드라마에서나 나오지 한국에서는, 그리고 자신 같은 서민은 특히나,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희소성은 모두 인위적인 희소성이었다. 실제로 부족해서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흘러넘치는 것을 국내에 파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먹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그리고 손해를 보더라도 언성을 높일 만큼 크게 손해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불만이 표출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풍요로움의 바다 속에 인공적인 희소성의 섬에서 살아왔다.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어린아이들에게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고 혼낸다. 아이들은 농부가 땀 흘려 소중하게 키운 쌀을 남기지 말고 먹어야 하며 밥을 먹을 때마다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배운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 해외여행을 나갔을 때 채소, 과일, 고기 등 식자재의 가격이 훨씬 낮은 것에 의아해한다. 하지만 국경 바깥의 풍부함을 그들에게 설명해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것은 개방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사람들을 내팽개칠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무너져내리는 와중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생계를 빼앗아가려고 한다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기에 자유무역으로부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쌀 재배를 대체하기에는 부족하겠지만 정부는 농민이 다른 농산물로 이전할 수 있도록 경제적, 법적, 제도적 지원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국산 농산물을 홍보하는데 도와주고 외국 농산물에 안전 문제가 있다면 조사하고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설령 이러한 지원이 부족하더라도 현 상태를 내버려 둘 수 없다. 정작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어린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이미 식량 주권을 빼앗겼다. 하지만 국민으로부터 식량 주권을 빼앗아 간 것은 외국 정부나 대기업이 아닌 우리 농민과 그들을 지지하는 우리 정부이다.



*출처(현재 URL 접속 불가): http://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749


*농림축산식품부 차트에 태국 국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만 국기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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