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엘 Jan 25. 2024

사우나 예찬

사우나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아 써봅니다.

난 사우나를 사랑한다.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혼자만의 사우나

그 시작은 고등학교 때였다. 고등학생 때, 주말에 집에 있으면 엄마는 그렇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했다. 아마 공부 열심히 해라, 엄마 친구의 딸은 이번에 전교 몇 등을 했다더라로 시작해 방 정리는 왜 안 하냐, 로 끝나는 이야기였던 것 같고, 이는 매주 반복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늘 목욕탕을 갔다. 2시간 정도, 혼자 있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사우나로 들어갔다. 마침 아무도 없었고, 그렇게 조용한 네모칸에서, 뜨거운 열기와 함께 나는 혼자만의 자유와 고립 그리고 마음의 편안함을 처음으로 맛보았다.


#최고의 소개팅을 위한 사우나

보송보송한 얼굴, 핑크빛이 도는 양볼의 홍조 효과, 온몸으로 풍기는 비누 냄새, 탄탄하고 깊은 트리트먼트에서 나오는 찰랑찰랑한 머릿 결. 그리고 모공이 없는 맨들맨들한 피부로 인한 엄청난 화장'빨'이 모든 것을 위해서는 사우나에 가야 한다. 나만의 매력이자 유혹 비법이라고 자부했다.


#나만의 베스트 명상 스폿, 사우나

나에겐 사우나는 조용히 호흡하며,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나만의 힐링스폿이다. 매일 시간에 쫓겨 정신없던 나를 들여다보며, 나에 대한 생각을 하고 나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는 공간. 핸드폰도 옷도 없는 사우나의 네모칸 안에서, 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조용히 생각하는 나만의 공간이다. 사우나의 뜨거운 열기로 몸이 달아오르고, 땀이 날 때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딱 3분. 호흡에만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 오고, 이 순간을 지나고 사우나 문을 열고 나가면서 맞는 시원한 바람, 찬물 샤워를 하면, 마치 새롭게 태어나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번뇌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사우나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사우나이다. 회사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업무에서 받은 다양한 스트레스들을 혼자 생각하고 정리하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던 곳. 그리고 다음을 계획하며, 나를 돌아보고, 그 상황을 마주하고, 분석하고 해설해 보며 다음을 준비할 수 있던 곳이다. 때론, 사우나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막 샘솟아 업무에 그대로 반영해 좋은 결과를 만들었던 프로젝트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코로나로 인해 사우나를 가지 못했던 그 여러 해 동안의 회사 생활은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여행의 백미는 사우나

여행을 가면, 꼭 새벽에 사우나를 간다. 새벽 사우나를 하며 바라보는 동해의 일출.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 노천탕 앞 끝없이 펼쳐진 전나무 숲 가지마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노천탕 안. 하늘을 올려다보면, 까만 하늘에 하얀 눈이 얼굴에 내려앉는다. 평생 잊지 못하는 순간이고, 귀한 경험이자 내 앞에만 펼쳐진 장관이다.  


#정보공유 방으로의 사우나

우리 동네는 이곳에서, 40년 이상, 50년 넘게 한 곳에서 살면서, 아이들도 결혼을 시키고, 그 손자, 손녀들까지 오는 그런 사우나가 있다. 그러다 보니 사우나의 아주머니들은 모두 친구고 지인이고 서로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우나에서의 아주머니들의 수다는 끊임없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다. 나도 모르게 어느 날, '여기 미용실은 어디가 좋아요?'라고 물어보았다. 아차차차차. 아주머니 4분 이서 격하게 난상토론을 하신다. '거기는 파마약이 독해. 거기는 손목을 얼마 전에 다쳐서 가위질이 어설퍼. 거기는 수건에서 냄새가 나. 거기는 어때 '라고 하시더니 15분 뒤 한 곳을 추려 정리해 주시고, 장단점을 알려주시며 결론을 내린다. 어디 이뿐이랴. 나물을 맛있게 삶는 법, 김치를 맛있게 만드는 법. 살림살이 싸게 저렴하게 파는 곳 등 모든 분들의 몇 십 년 노하우가 그대로 공유되는 곳이다.  


#인생의 삶과 지혜가 그대로 담겨있는 사우나

죽음과 출산, 병과 기쁨 그 모든 이야기들이 그 작은 사우나 방에 가득하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눈을 감고 듣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의 삶에 담긴 지혜가 온몸으로 흡수된다. 죽음을 맞이하고 함께 하던 배우자의 죽음을 직접 경험하며 느낀 마음과 후회들을 들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내가 다시 인생을 산다면.'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의 주제는 가득한 배움이 있다.


#엄마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문득, 엄마가 너무나 좋아하였던 사우나가 생각이 났다. 명절이 지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땐 엄마도 사우나를 다녀오셨다.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래서 조금은 슬프다. 그 마음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하지만, 유방암으로 작년 절제수술을 하셔서, 이제는 사우나에 갈 용기가 없어 못 가신다고.. 결국 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나만큼 사우나를 사랑하던 엄마였기에. 그 아쉬움이 어떤 마음으로 다가오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내 마음도 함께 속상해진다.


사우나가 나에게 이렇게 많은 의미였는지 이전에는 몰랐다. 코로나를 거치고 다시 사우나를 갈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엄마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더 사랑하게 되었다.


#사우나 사랑하시나요?



이미지출처: https://www.freepik.com/


매거진의 이전글 산타할아버지가 진짜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