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그만 좀 참아, 너만 손해야
“솔직해서 미안한데, 그래도 진짜잖아.”
메거진에서는 내 소설들처럼 빙빙 돌려서 이야기 안쓴다.
한때 나는 참는 게 성숙이라 믿었다.
말 안 하면 관계가 오래간다고,
눈 감으면 다들 덜 다칠 거라고.
그런데 웃긴 건, 참는 쪽만 망가진다.
회사에서도 그랬다.
팀장이 막말을 해도 웃으며 넘겼고,
업무가 몰려와도 “제가 하겠습니다” 했다.
밤 10시까지 야근하며 말했지.
“저 정도는 다들 하잖아.”
근데 아니더라.
다들 안 해. 나만 했어.
그리고 결국, 나만 탈이 났다.
몸이 먼저 무너졌고,
그다음엔 자존감이 무너졌다.
마지막엔 인간관계가 끊겼다.
왜냐고?
참는 사람은 결국 화내는 방식조차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내 가족을 농담 삼아 언급했다.
웃고 넘겼다.
“에이~ 뭐 농담이죠!”
속은 부글부글했지만 그냥 넘겼다.
왜?
그게 더 ‘원만한 사람’ 같았으니까.
근데 그 사람은 그날 이후로 계속 선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넌 왜 가만히 있었어?”
그래. 내가 가만히 있었지.
그게 무서웠다.
내가 가만히 있었단 사실이,
누군가가 나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신호였다는 걸.
참는 건 언제나 첫날은 미덕 같고, 마지막은 후회다.
연인 관계에서도 비슷했다.
"이건 아닌데" 싶은 상황에서도 말하지 못했다.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스스로를 눌렀다.
왜?
상대가 떠날까 봐.
분위기 흐릴까 봐.
내가 너무 예민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결국 내가 너무 싸구려 인간처럼 취급받게 됐다.
사람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참고
그 이상은 바로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제야 안다.
참는 게 성숙이 아니라는 걸.
말 못 하는 게 착한 게 아니라는 걸.
참는 순간, 관계의 주도권은 항상 상대에게 넘어간다는 걸.
그래서 말한다.
지금 참고 있는 당신,
진심으로 묻는다.
그게 정말 성숙이야?
아니면 두려움이야?
누군가가 당신을 힘들게 했을 때,
그게 우연이 아니라 반복이었다면
그건 ‘말해야 할 때’다.
‘나답게’ 살고 싶다면,
침묵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야.
그리고 또 있다.
참는 사람에겐 '나중'이 없다.
“언젠가 얘기해야지.”
“이번만 넘기자.”
“다음엔 제대로 말할 거야.”
하지만 그 ‘다음’은 오지 않는다.
습관이 되면, 침묵도 성격이 된다.
상대는 안다.
이 사람은 화 안 낼 거라는 걸.
그러니 더 넘본다. 더 밀어붙인다.
그리고 결국, 그 관계는 일방통행이 된다.
이제 당신에게 묻겠다.
오늘도 또 참았는가?
상대의 기분을 위해?
분위기 안 흐트러지게 하려고?
그럼 당신의 기분은 누가 챙겨주나.
감정은 숨길 수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참는다고 감정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건,
가라앉은 후에 폭발하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좀 참자.
너만 손해니까.
거절하는 법을 배우자.
“No”는 나쁜 말이 아니다.
오히려 "괜찮아"라는 말이, 당신을 망가뜨릴 수 있다.
불편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용기를
당신 스스로에게 허락하자.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들 참고 살아.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그 말 틀렸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게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된 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말해야 할 순간에 침묵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하자.
그만 참고,
그만 속이고,
그만 맞춰주자.
당신도 이제 누군가의 감정을 챙기기보다
당신 자신의 감정을 지켜야 할 때다.
“참는다고 해결 안 돼.
오히려 너만 싸구려 인간 취급받아.
이제는 말할 타이밍이야.
'그만해'라고, 네가 먼저 시작해.”
2화. “회사에 정 붙이지 마, 거긴 가족 아니야”
"회사는 너를 지켜주지 않는다.
정 붙이지 마. 그건 가족이 아니라 계약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