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들어가 보고 싶은 관광지의 비밀
관광지에서 가장 들어가 보고 싶은 건물은 뭘까? 못 들어가는 건물이다. 문이 활짝 열린 건물보다 굳게 닫힌 건물이 더 들어가 보고 싶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은 들어가는데, 나는 티켓이 없어서 못 들어간다면 그 아쉬움과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식당 메뉴판에서 솔드아웃된 음식이 가장 맛있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비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알카사르에 관심이 없었다. 스페인의 주요 도시에는 알카사르가 하나씩 있고 직전에 방문한 코르도바에서는 알카사르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세비야의 알카사르는 예매가 필수인 데다, 표 구하는 것이 그렇게나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세비야 첫날에는 예매 사이트를 수백 번 새로고침하며 취소표를 찾았다. 수강신청, 뮤지컬, 포스트시즌으로 단련된 실력이라면 손쉽게 성공할 것만 같았다. 로밍 데이터를 엄청나게 낭비한 끝에 원하던 표는 얻지 못했고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매표소 앞에 줄을 서는 것뿐이었다.
매표소가 있는 반데라스 광장에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섰다.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듯 황급히 나섰는데 광장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여덟 시에 오는 게 이렇게 힘든데 일곱 시에 온 사람들은 뭐지? 여기서 두 시간을 서 있는 동안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보았다. 늦게 와놓고 표를 대신 사줄 수 없겠냐고 몰래 부탁하는 사람…. 새치기를 하다가 직원에게 제지당하는 사람…. (경찰들은 바보가 아니다! 라는 훈계 듣는 것도 봤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두 시간을 기다려서 매표소에 도달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안내문은 표 구매 직전에만 보였다. 카드결제만 가능. 카드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없었다면 잊지 못할 하루가 될 뻔했다.
오픈런을 해서 들어간 알카사르는 기대만큼 정말 좋았다. 힘들게 구한 표로 끝내 입장에 성공했기에, 사자의 문을 통해 중정으로 진입할 때의 희열은 세상 그 어느 건축물에도 비할 수 없었다. 오늘의 오픈런이 헛되지 않았구나! 건축에는 이른바 ‘입장의 기쁨’이 있는데, 어떤 건물이든 일단 내부로 들어가면 조금 즐거워지는 현상이다. 내부에서는 기이한 공간 경험을 했다. 들어가는 것이 참 어려웠는데 나가는 것은 더 어려웠다. 알카사르는 스페인어로 성인데, 세비야 알카사르는 증축과 개축이 반복되면서 평면이 엄청나게 복잡한 성이 되었다. 평면이 복잡하다는 것은 길 찾기가 극악으로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선 안내와 사이니지는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궁전 곳곳에 지도 안내판이 붙어있는데, 현위치가 표기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지도에서 내가 대체 어디 있다는 거지? 건축과를 졸업한다고 꼭 길을 잘 찾는 것은 아니다. 미로처럼 방들이 펼쳐진 구중궁궐을 떠돌면서 들어갈 수 있는 거의 모든 방에 가보았다. 한국에서 피난 법규상 거의 모든 신축 건물은 보행거리 50M 내에 계단이나 출구가 무조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알카사르라는 기이한 건물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도무지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창덕궁 후원을 예전에는 비원, 즉 비밀의 정원이라고 불렀다. 비원이라 불릴 때는 대부분 지역이 출입 금지라 극히 일부분만 관람할 수 있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일반 관람객은 부용지-부용정-주합루가 있는 입구까지만 구경할 수 있었다. 비원의 깊숙한 곳에는 온갖 신비로운 정자들이 가득하다는데 못 가보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성인이 되고 관람 정책이 바뀌면서 처음으로 후원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가보았다. 존덕정이라는 정자에 처음으로 갔을 때가 생각난다. 사실 건축이나 풍광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오랫동안 막혀 있던 곳을 드디어 들어갔다는 생각에 엄청난 감회에 빠져들었던 생각이 난다. 입장에는 어떤 해방의 감각이 존재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중세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수도원의 탑 꼭대기에는 문이 굳게 닫힌 장서관이라는 공간이 있다. 장서관은 극소수의 인물들만 아주 제한적으로 출입할 수 있는데, 그 때문에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제아무리 평범하더라도 기묘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파리의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네 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 개의 탑 사이에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정원이 위치한다. 공공도서관의 정원이 이런 아우라를 풍기는 것은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릴 때 읽은 궁궐 답사 책 중에 창덕궁 낙선재를 마음껏 구경하고 온 사람의 책이 있었다. 출입 금지인데 이 사람은 어떻게 들어간 거지? 책 말미에 답사의 비결이 나왔다. “아무도 없길래 우리는 슬쩍 들어갔다.” <장미의 이름>에서도 장서관 문이 함부로 열리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못 들어간다고 할 때 더 들어가고 싶어지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참을 수 없는 욕망이다. 그래서 알카사르 오픈런은 힘들지만 값진 경험이었다. 표가 없다고 하니 가고 싶어졌고, 줄을 서 있다 보니 너무 들어가고 싶어졌다. 세비야 알카사르에서는 뭐가 가장 좋으셨나요? 알카사르에 들어간 것 자체가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