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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a Jan 23. 2024

아들이 대신 써주는 엄마의 인생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엄마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 #1

어느날 간경화 판정을 받은 어머니,


벼락같은 소식에 온 식구들이 초 긴장을 했다.


매일 같이 술을 드시던 엄마에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20년 가까이 거의 매일 술을 드시던 우리 엄마에게는 시선을 돌릴 다른 무언가가 필요해 보였다.


내가 어렸을 때, 라디오 사연도 보내 당첨되기도 했던 우리 엄마는


배운것은 많지 않으셨지만 글솜씨와 말솜씨가 좋으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인생을 한번 정리해보는 것은 어떠신가 물었고


그날부터 우리 엄마는 밤낮으로 노트에 자신의 이야기를 써나가셨다.


어머니의 개인 브런치를 발행해드리고 싶었지만 무슨이유인지 잘 되지 않아


내 브런치에 정리해 드리고 집필한 내용의 연재가 끝나면 책으로 발행해드릴 계획이다.


사람의 인생이 어찌 이렇게 파란만장 할 수 있을까?


내가 알고있었지만 다 알지는 못했던 엄마의 인생을 한자한자 다시 입력하면서


엄마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 힘든 누군가가 있다면,


세상의 펀치를 한없이 두들겨 맞아가면서도 


이렇게 버텨나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기를 바라며


시작하겠습니다.




1. 부산에서의 만남


"80년 어느 한 여름 시골에서 순박하게만 살아왔던 한 소녀가 부산에 계신 이모네를 방문하러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하던 중 뒤에서 왠 청년이 나의 옷소매를 잡고 함께 차 한잔만 하고싶다고 했다.     


난 이게 뭔일인가 겁먹은 얼굴로 안됩니다. 집에 빨리 가야한다며 뿌리쳤지만 웃으면서 시종일관 차 한잔만 마시고 가라고 했다.     


지하찻집에서 커피를 어떻게 시키는 지도, 커피맛도 모르는 시골처녀에게 커피라니..     


차 한잔과 함께 뒷모습이 너무 이뻐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부터 따라왔다고 하면서 청년은 자신의 통성명과 자라온 환경, 어디서 뭘하는지를 이야기 했다.     


한편으로 무섭고 한편으로 어떻게 빠져나갈까 그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불량스럽진 않았고 남색 바지에 하늘색 남방을 입은 아주 순수하게 보이는 남자였다.     


집으로 빨리 가야한다며 일어섰지만 밤길이 무서우니 함께 가주겠다고 했다.  

   

한사코 사양했지만 이모네 집골목에서 고마웠다고 인사후 후다닥 이모네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모네에서 일보고 시골집으로 올라왔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집 주소를 들고 시골집으로 찾아온 그사람.     


아무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이모네 집에 가서 주소를 알아 찾아온 것이 아닌가.     


어머니 아버지께서 동네 소문난다고 노심초사     


빨리 보내라고 성화를 부리고 그래서 다음에 부산에서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돌려보낸 후 


"일주일도 체 안되어서 위독하다는 전보가 왔다."


엄마 아버진 아직 나이도 어린데 가지 못하게 했지만 아프다니 한번만 보고 올게요. 라는 말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갔다.     


병원에 누워있어야 할 사람이 시외버스 정류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너무 어이가 없어 뭡니까 하니 너무 보고싶어서 그렇게라도 해야했다고...     


너무 어이가 없어 다시 돌아가려고 했지만 나를 결국 그사람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날 속이고 자기랑 살자는 제안을 했다.     


그 다음날 그 사람은 회사에 출근하면서 내가 집 나갈까봐 밖에서 문을 잠궈놓고 출근을 한 것이 아니겠나.     

너무 황당하고 무서웠지만 나갈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 당시 휴대폰도 삐삐도 아무것도 없었으니...     


오후에 퇴근한 그 사람을 보고 사람 너무한거 아니냐고 난 막소리치며 집에 보내달라고 울면서 애원했지만 그 사람이 나에게 보여준 것은 나를 위해 혈서를 쓰겠다며 새끼 손가락을 물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난 장선이 한사람에게 모든걸 바치고 사랑하겠다. 행복하게 해준다. 는 혈서를 썼다.    

 

손가락에서 피는 나고 너무 무서워 알았으니 그만해요. 라고 말리고선 그 집에 눌러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두 번 보고 어떻게 세 번째에 이럴 수 있나.     


며칠 후 엄마 아버지께서 호통을 치며 결혼할 날 잡아 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고집이 세고 열등감이 너무 심한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난 돈도 없고 하니 처갓집 마당에서 물 한그릇 떠놓고 혼례를 하겠다고     


엄마는 우리딸 시계와 반지만 해주면 나머지는 우리가 다 합세 이야기를 해도 막무가네.    

 

아무것도 못해주겠다고.     


우여곡절 끝에 친지들만 모여 우리집 마당에서 옛법 혼례를 치렀다.     


그야말로 닭 암수 두 마리 올리고 정말 꼬꼬재배 결혼식을 치르고 하룻밤 친청에서 자고 혼수로 마련해준 이불보따리 울러메고 버스타고 부산의 그사람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때부터 나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내려오자마자 자기는 성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둘이 힘 합해 성공하자는 말과 함께 캔터키 치킨 가게를 얻어 나보고 하자는 것 아닌가.     


그 사람은 출근을 그대로 하고 21살 어린 시골에서 온 세상 초짜배기가 뭘 안다고.     


난 못해요 장사란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던 나를 보고 숫기도 없어 말도 잘 못하는 나에게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시도는 해보자 했다.     


닭을 떼와서 양념해서 튀겨서 판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양념 레시피를 매일 연구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맛 평가를 해가면서 장사를 시작했다.     


가게는 하단 에덴공원.     


그때는 허허벌판 집도 몇채 안되는 곳이지만 동아대학교 부근이라 학생들이 많았다.     


고기를 파니 당연 술도 팔게 되고     


순하다 못해 바보같은 내가 뭘 할수있을까 겁도 나고 그 사람의 역정도 무섭고 마지못해 하는 장사가 뭣이 재미있을까     


밤에는 레시피 연구 낮과 저녁에는 닭굽고 서빙하고 계산하고 술에 취해 돈안주고 욕하는 사람들 뒤치닥 거리에.     


그리고 내가 해결 못하면 살 건물에 있던 슈퍼 아주머니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입덧도 없이 생리를 하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임신 6주라고 했다.     


축복받아야 할 임신을 못마땅히 여기는 남편,    

  

벌써 아기를 가지면 어떻게 하냐며 핍박을 했다.     


점점 배는 불러오고 힘에 벅찼다.     


다리도 붓고 발도 아프고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 남포동 시장에 밑반찬 거리 사러 매일 다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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