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대신 써주는 엄마의 인생
식당 서빙, 보험설계사로 열심히 몸이 부서져라 일했고 가는데마다 나름 인정도 받았다.
그런데 단칸방에서 오피스텔로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이 서울로 올라가 편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나는 그렇게 딸을 보냈다.
물론 그때부터 술과 친구가 되었지만.
그리고 일하는 시간이 아니면 외로움과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왔다.
그때 뜻밖의 남자가 나타나 말했다.
돈 주우려고 합니까?
왜 그리 땅만 보고 다닙니까?
새파란 하늘도 좀 보고 다니라며 다가온 사람.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다고 얘기했다.
곧 죽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지 조건 없이 내 곁에 다가왔다.
너무 좌절하지 말라며 다시 용기 내어 살아보라 했다.
나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나에게 다가온 그 사람은 흐르는 강가에 예쁜 집 지어서 물고기 잡아 매운탕 끓이고 산나물 캐서 반찬 해 먹으며 모든 시름 잊고 살자며 오만 예쁜 말을 다 해가며 유혹했다.
하지만 난 남자만 보면 징글징글했고 남자 만날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키가 너무 크고 덩치가 커서 무섭고 싫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마음이 든든했다.
딸에게도 선물을 자주 해주며 용돈도 전해주라며 나에게 주었다.
알게 모르게 도우려 애를 많이 썼다.
그래서 나 가게 하나 얻어서 장사를 한번 해보려 하는데 도와줄 수 없냐고 물었다.
무슨 장사?
벼룩시장 보고 있는 돈 맞춰서 마땅한 곳이 있으면 해보려고 한다고 얘기하니 한번 알아보라고 했다.
절 앞이라 그런지 손님이 꽤 많았다.
공단지역이 있으니 아베크족, 회사회식 등 아침에는 젊은 스님들이 가끔 와서 식사하고 가시고 밤에는 높은 스님들께서 오시면 맥주 1박스, 소주 1박스 거뜬히 드시고 새벽 나절에 들어가시곤 했다.
그래도 그 남자 (지금의 남편)이 함께 시간을 보내주니 힘들지 않았다.
오만 궂은일은 남편이 다 해주었다.
오픈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법원에서 등기우편물이 와서 보니 압류를 한다는 통지문이었다.
알고 보니 사기계약을 한 것이다.
그때부터 법정 싸움이 또 시작되었다.
건물주와 전 영업주와 2:1 싸움,
눈앞이 캄캄했다.
건축물대장이나 등기부등본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한 것이었다.
이미 전 영업주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면서 전세금이라도 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속이고 권리금까지 받아갔던 것이다.
아차 싶어 법원 민원실 무료상담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한 결과 전세금은 물론 권리금까지 전 영업주와 해결해야 했다.
그때부터 두 곳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어야 했다.
두 곳모두 1차에 승소를 했다.
그런데 기존 영업자도, 건물주도 모두 연락두절,
전 영업자 주소를 들고 찾아갔다.
언양 어느 골짜기에 조그만 빌라에 살고 있었는데 2살, 5살 꼬맹이와 엄마밖에 없었다.
아빠는 내가 인수할 무렵 가게 음식하는 과정을 좀 배운다고 갔을 때부터 오락실에서 사는 것 같았다.
젊은 엄마는 미안해요. 우리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아무리 그렇지만 본인들 살고자 남을 이용하는 법이 어딨 냐고 방 2칸에 좁은 거실에 앉아보니 내 처지도 처지지만 같은 여자로서 모진 말 못 하고 나와버렸다.
건물주를 찾아 해운대 달맞이 고개 언덕배기에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만나보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했더니 몇 월 며칟날 주겠다고 찰떡같이 약속을 하고 내려왔지만 그때부터 감감무소식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들은 엄마 건물주 신용조사 의뢰하면 받을 수 있다는데 거기에 의뢰해 볼까요 했다.
하지만 30만 원만 날리고 이 사람들도 못 받고 연락두절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자꾸만 생길까
내가 너무 아둔한 것일까 아님 바보인 것일까
그때부터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술로 마음을 달래고 가게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버리고 빈손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방황에 방황
그래도 한 달 동안 찰진 인생공부를 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그냥이 없구나 싶었다.
정말 공짜 없는 것이 인생이구나.
나는 점점 술만 먹고 옛 과거에 사로잡혀 신세한탄과 자식들 걱정뿐이었다.
빨리 돈 벌어 아이들 곁에 가고 싶었는데 헛발질만 하고 있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정신 차리자 아이들만 생각하자 인생이 괘 이렇게 꼬이는지 지인분이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철학원에 가서 인생상담을 한번 해보자고 권해주었다.
그래서 간 곳이 서면 어디에 동양철학 연구소란 곳에 갔더니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첫눈에 하시는 첫마디가
넌 영이 맑아 병리학을 하면 공부가 잘 될 것이다.
라고 해서 선생님 저는 공부할 돈도 없고 이 혼미한 정신으로 어떻게 이 어려운 공부를 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그러면 돈 생각, 생각 흩트려진 거 해결해 줄 테니까 그러면 아픈 것도 없어질 거라 했다.
내가 너무 불쌍해 보였나 보다.
그날부터 학원생들 앞에서 내 소개를 하고 그야말로 밤낮을 모르고 공부를 했다.
낮에는 학원에서 밤에는 집에서 밤이 새도록 공부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