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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로 Jul 04. 2021

정체를 드러낼 뻔한, 소심한 한국형슈퍼히어로의 일상

아기새 삼형제 구조 대작전

정작 나는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다. 마음 속 한 장면을 굼뜬 손으로 옮겨본다.

간만에 동네 맛집에서 아내와 함께 저녁 먹고 들어가던 중이었다.

찻길 건너 문 닫힌 상점 처마 밑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멀리서 보니 짹짹이고 있는 작은 아기새 한 마리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고 있었다.

어디선가 "삐이익~" 하는 소리가 났다.

어미 정도 되는   마리가 비명인지 위협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어쩌다 아기가 떨어졌누! 안타까워하며 발길을 옮기려는 사이,

한걸음 옆 상가 안에서 소리를 내며 꼬물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허리를 숙이고 소리 나는 쪽을 들여다본 순간 어깨가 움찔했다.

상가 계단 안에 작은 생명제들이 (그 누구의 관심도 못 받은 채로) 서로 몸을 맞대고 떨고 있는 게 아닌가?

회갈색 깃털이 제법 났지만, 아직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작고 동그란 아기새였다. 그것도 두 마리나!

짹짹 소리 내며 울 때, 깃털의 무채색과 대비되어 입 안의 선홍 색이 무척 뚜렷했다.


찻길 사이 양쪽으로 새끼를 잃어버린 어미새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쪽 두 마리는 건물 안쪽 깊숙이 숨어 있는 바람에 어미가 못 찾는 것 같았다.

그래서 눈에 잘 띄도록 아기새들을 인도 위로 밀어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좁은 길 위에 오가는 사람이 많았고, 행여 차도로 넘어갈까 위험해서 그럴 수도 없었다.

어미새의 울음소리는 점점 처절함을 더해갔고, 생이별의 현장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자꾸만 타들어갔다.


어미를 찾는 새끼의 몸짓도 지나가는 행인들에겐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이쪽에도 어느덧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최초 목격자의 책임감이랄까? 혼란한 이 상황을 그냥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선 작은 종이 상자에 담아서 상가 밖으로 꺼내보기로 했다.

상자를 눕히고 손으로 밀어 넣으려는데, 얌전하던 아기새들이 날아오를 듯 날갯짓하며 퍼덕거렸다.

기껏해야 손가락 세 마디만 한 크기에, 바들바들 떨던 녀석들이 그렇게 힘이 센 줄은 몰랐다.

기를 쓰고 발버둥을 치니 뚜껑 없는 상자 안에 담기지를 않았다.

난감해할 때 즈음, 한 외국인 여학생이 자신의 옷가지를 꺼내고 속이 깊은 그물 가방을 쾌척해 주었다.

다국적 연합작전에 힘입어 가방 안에 아기새 두 마리를 넣는데 성공했다.

밖으로 가지고 나와 어미새가 보도록 가방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어미새는 건너편 새끼도 신경 쓰이는지 찻길 위를 부산스럽게 맴돌기만 했다.


양쪽 편에 떨어져 있는 아기새 형제들을 한쪽으로 모아 둘 필요가 있었다.

건너편 쪽이 이쪽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상점 위에는 차양이 있어 보호가 되면서도, 전면이 개방되어 있어 어미새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바로 앞에 횡단보도가 없어서 한참을 돌아가야만 했다.

나는 아기새 두 마리가 담긴 가방을 들고 길 건너 상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가는 길이 왜 그리 길게 느껴지던지.

'아기새가 행여 흔들려서 다칠까?' 하는 걱정과  '새끼가 안 보인다고 어미가 금방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에 살금살금인 동시에 성큼성큼 뛸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사람들이 모여있는 상점 앞에 도착해서는 가방을 열고 홀로 있던 녀석 옆에 데려온 둘을 내려두었다.

둘일 땐 조금 쓸쓸해 보였는데, 역시 셋이니 보기 좋았다.

삼형제가 맞이한 감격적인 상봉의 순간도 잠시, 아기새 한 마리가 갑자기 인도 쪽으로 뛰쳐나갔다.

촘촘히 막아선 사람들 다리 사이를 뚫고 나갔는데,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손 쓸 겨를도 없었다.

아마도 길 위의 어미의 목소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새끼도 저리 애타게 어미를 찾았던 것일까?'싶던 순간,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아기새가 찻길까지 뛰어든 것이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찻길 위에 놓인 작은 녀석이 보일 턱이 없었다.

차들이 인정사정없이 지나쳤다.

주위 행인들의 비명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차가 한 대씩 지나갈 때마다 아기새의 모습이 차에 가려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안보이던 새가 움직이면 다들 안도하는 상황이 몇 번 되풀이되었다.

길 위의 어미새도 어쩔 줄 몰라하며 퍼덕거리고 있었다.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이라면 아마 이럴 때 홀연히 짠 하고 등장했을 순간이다.

(나의 정체를 드러내고) 차도로 들어서야 하나 주저하던 사이, 한 남학생이 불쑥 움직였다.

남학생은 차분하게 손짓으로 차들을 막아서며 길 위로 들어섰다.

길 한가운데에서 조심스럽게 아기새를 양손으로 주워 들었다.

키 크고 잘생긴 (그 순간엔 그렇게 보였다) 데다 용감하기까지 한 그 남학생에게 모종의 질투심을 느끼며,

나도 차들이 멈춰 선 길 안으로 들어가 가방에 아기새를 담아왔다.


다시 셋이 모였다. 이들이 오늘 몇 번을 헤어졌다 만나는지 모른다.

녀석들을 상점 앞에 그대로 두었다가는 또 뛰쳐나갈 위험이 있었다.

옆에 지켜보던 한 아가씨가 큰 종이 상자를 구해왔다.

상자를 눕히고 아기새들을 넣으려 했다.

하지만 길 건너에서도 그랬듯이 퍼득거리는 녀석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잠깐만 미안해. 도와주려는 거야. 안 아파. 옳지. 이제 괜찮아.”

알아듣던 말던, 녀석들을 달래가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손으로 상자에 밀어 넣었다.

발버둥치던 녀석들 입장에서는 얻어맞는 느낌이었겠지만, 단호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은 뛰쳐나오지는 못해도 어미가 접근할 수 있도록, 상자 뚜껑을 비스듬히 반쯤 열어 놓았다.

옆에 있던 다른 행인이 구청에 자신이 신고를 했고 누군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기새 삼형제는 상자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게 되었다.

나는 함께한 시민 구조대 일행에게 간단히 눈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렸다.

조금 전 아기새를 구했던 용감한 남학생은 여자 친구와 같이(역시!) 표표히 제 길을 걸어갔다.

팔짱을 끼고 가는 둘 사이에는 유난히 틈이 없어 보였다.

옆에 있던 아내가 오늘의 히어로 쪽으로 눈짓을 하며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나는 '남편보다 남자 친구가 더 용감하다.'는 사실을 고지하였다.


아기새 3형제의 운명을 걱정하기엔, 내 인생 하나 건사하기에도 벅차다.

모쪼록 어미랑 새끼들이랑 자연의 품으로 잘 돌아갔기를 기도해 본다.

조그만 녀석들의 세찬 날갯짓이 아직도 내 손에 생생하다.

그 정도 힘이라면, 그런 생명력이라면, 어떤 일이 닥쳐도 잘 이겨낼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새들을 두고 온 상점 이름이 떠올라 조금 찜찜했다.

상점 이름은 '못된 고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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