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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로 Dec 03. 2023

가장 심오한 메시지는 "말 없는 말", 즉 침묵이다

시끄러운 세상, 삶을 바꿔줄 침묵의 마법

 소리가 들리나요?

얼마 전, 원주에 위치한 ‘뮤지엄 산’에서의 일이다. 긴 줄에 서서 지루함을 느끼며 전시관 입장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단풍이 짙게 물든 깊은 산중에 “툭~”하며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에 다시 “서걱”하는 소리가 났다. 작은 소리였지만 고요한 산 전체를 공명하는 듯 또렷했다. 무슨 동물이라도 있나 싶어 산중을 들여다보았다. 알고 보니 높은 나무에서 단풍잎이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얼얼했다.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평생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잎이 내는 소리가 적막한 산야를 울리듯 퍼져나갈 줄은 몰랐다. 나는 자연이 선사하는 신비로운 감각적 체험에 사로잡혀, 전시관 입장도 잊고 멍하니 빈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의 시간,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 2023 Roh.

우리 일상은 소음으로 가득하다. TV, 라디오에서는 같은 뉴스가 반복되고, 스마트폰은 알람으로 잠잠할 새가 없다. 이어폰에서는 (음악도 아닌) 유튜브 방송이 온에어 중이다. 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말은 얼마나 될까? 소음은 단순히 소리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번쩍이는 빛과 쾌쾌한 냄새, 불쾌한 접촉 등 우리 감각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일체의 것들이다. 누구를 탓하랴? 우리 스스로 잠깐의 지루함도 견디기를 거부한다. 심심할 틈이 생기면 스마트폰 화면을 의미 없이 스크롤한다. 쉼 없이 자극을 좇다 보니 침묵의 시간을 찾기 어렵다. 


현대인은 점점 더 조용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2014년 science지에 실린 하버드대 연구팀의 실험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15분 동안 완전히 침묵하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가벼운 전기 충격을 가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선조들은 오랫동안 고요와 침묵의 시간을 누려왔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었다.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고요한 휴식으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잠잠한 휴식의 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침묵의 효능

1) 몸과 마음의 회복

일상에서 자극이 계속되면 우리 몸은 늘 높은 경계 태세를 유지한다. 고요한 순간 우리 몸은 부교감 신경계를 활성화하여 이완을 돕는다. 미국심장협회는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명상이나 마음챙김을 연습하면, 고혈압을 관리하고 심장병 위험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음악을 듣고 2분간 침묵하면, 음악의 종류와 관계없이 피험자의 심박수와 혈압이 크게 감소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침묵은 자율신경의 균형을 맞추어 몸을 편안하게 한다. 

 

침묵은 뇌 회복에 필수적이다. 침묵을 통해 뇌가 쉬고 활력을 얻는다. 대표적인 예가 수면이다. 먼저 조용해야 잠이 잘 온다. 잠자는 동안 뇌는 침묵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청소하고 회복시킨다. 뇌는 침묵을 정보 부족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정보의 일종으로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감각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세포가 활성화된다. 뇌가 작업하지 않는 즉, 멍 때리는 순간을 디폴트 모드(default mode)라고 한다. 이때, 뇌는 멈춰 있는 게 아니라 내부와 외부를 통합하여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려는 상태다. 침묵은 우리가 누구인지 이해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제공하여 오히려 생각을 또렷하게 만든다. 2013년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매일 2시간씩 침묵에 노출시켰을 때, 기억과 관련한 해마 영역에서 새로운 뇌세포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기억상실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조용하고 어두운 방에서 10분간 휴식을 취하는 것 만으로 기억력이 14%에서 49%까지 향상되었다. 이미 학습한 내용을 정리하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2) 대인관계 개선

현대 사회에 소통이 중요하지만, 현대인은 소통을 강요당하고 있다. 침묵은 원만한 소통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침묵 속에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다. 내가 침묵하는 순간 상대방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대화에 집중하게 되고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침묵은 강력한 전달력을 지닌 도구이다. 때때로 가장 심오한 메시지는 ‘말 없는 말’의 형태를 띤다. 침묵은 잠시 멈추고 생각하며, 말하지 않은 말의 무게를 느끼도록 해준다. 소설가 김영하가 말했다. “인생에서 제일 고마운 사람들은 나를 기다려준 사람들입니다.” 힘든 이에게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위로 중 하나는 침묵이다. 침묵으로 기다려 줄 때, “너를 믿는다.”는 묵직한 메시지가 전달된다. 진료실에서 환자 보호자가 묻는다. “제가 집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환자는 그 말 때문에 힘들어했다. 대개는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3) 창의력 증진

고요한 침묵의 순간,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다 외부의 간섭 없이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얻는다. 또한 침묵을 통해 창의성의 4단계 중에서 특히 '부화 단계’에 필수적인 마음의 방황(mind to wander)이 일어난다. 부화 단계는 특별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뇌에서 무의식적으로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다. 마음의 방황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해결책이 나온다. 명상, 산책, 숙면은 모두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훌륭한 원천이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더 높은 수준의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침묵의 가치

말러 교향곡 9번의 하이라이트는 악장 속에 있지 않다. 곡이 끝난 뒤에 찾아온다. 85분을 달려온 음들이 서서히 소멸된 뒤 이어지는 정적의 순간, 관객들은 침묵 속에서 숨죽인 채 카타르시스를 맞이한다 (2010년 아바도의 루체른 페스티벌 실황에서는 무려 2분 간 지속되었다). 침묵으로 음악이 완성될 때, 청중은 강렬한 정서적 체험을 하게 된다. 일상에서도 고요한 침묵의 시간 속에서 생각의 밀도가 가장 높아질 수 있다. 요즘 외부 소음을 없애 주는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또는 헤드폰이 인기다. 그만큼 우리 일상에는 벗어나고 싶은 소음이 많다는 뜻이다. 고요한 자신만의 공간을 찾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출발선 앞에 선 육상선수들은 모두 침묵하며 숨을 고른다. 침묵은 혼돈을 뚫고 자신과 만나게 하는 힘이 있다.


어쩌다 보니 말이 많았다. 가을이 지고 있다. TV와 유튜브를 끄고, (이 글이 담긴) 스마트폰도 잠시 내려놓자. 번잡한 일상의 노이즈를 캔슬링을 하고, 마음속에 사뿐히 떨어지는 낙엽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고요 속에 떠오르는 직관이 당신을 더 나은 선택으로 이끌 것이다. 


Reference)

Wilson TD, Reinhard DA, Westgate EC, Gilbert DT, Ellerbeck N, Hahn C, Brown CL, Shaked A. Social psychology. Just think: the challenges of the disengaged mind. Science. 2014 Jul 4;345(6192):75-7. doi: 10.1126/science.1250830. PMID: 24994650; PMCID: PMC4330241.


Dewar M, Garcia YF, Cowan N, Della Sala S. Delaying interference enhances memory consolidation in amnesic patients. Neuropsychology. 2009 Sep;23(5):627-34. doi: 10.1037/a0015568. PMID: 19702416; PMCID: PMC2808210.


Ritter SM, Dijksterhuis A. Creativity-the unconscious foundations of the incubation period. Front Hum Neurosci. 2014 Apr 11;8:215. doi: 10.3389/fnhum.2014.00215. PMID: 24782742; PMCID: PMC3990058.


Sun S, Yao Z, Wei J, Yu R. Calm and smart? A selective review of meditation effects on decision making. Front Psychol. 2015 Jul 24;6:1059. doi: 10.3389/fpsyg.2015.01059. PMID: 26257700; PMCID: PMC451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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