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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3] 18. 그런 법이 있는 줄 몰랐어요

스타트업에게 보안이란?

  살아가다 보면 어느 한순간이 기억 속 깊숙이 박힐 때가 있다. 아주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잠재의식 속에 콕 박혀있는 경우. 그러다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다시 떠올라 멍하니 생각하게 만드는 기억들. 아마도 그런 기억이었을 것이다. 불현듯 과거의 그 기억이 떠오른 이유는. 갑자기 왜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오래전 뉴스에서 보았던 그 장면과 그 대사. 마스크를 쓰고 수갑을 찬 채 잡혀가던 업체 대표가 외치던 모습과 그 말이.


"그런 법이 있는 줄 몰랐어요"


  아마도 이 말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뇌리에 깊이 남아 있는 그 외침. 내가 보안컨설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이기도 했고, 마침 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위치정보법(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에 관한 법률, 2005년 제정)에 빠져 위치정보보호 컨설팅에 열심이던 그때.


  스마트폰(2007년 최초 출시)이 나오기 전이었던 그때도 휴대폰을 이용한 위치정보서비스는 학생들과 젊은 층에서 많은 인기가 있었고, 친구 찾기 서비스와 같은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한 작은 회사들은 통신사들을 통해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더랬다.


  그리고 그 일이 벌어졌다. 한참 인기를 끌던 한 작은 위치기반서비스업체의 대표와 직원들이 불법으로 신고당해 모두 경찰에 구속된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수갑을 찬 채 끌려가던 대표는 왜 불법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냐고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 법이 있는 줄 몰랐어요"라고.


  그 말이 사실이란 걸 진심이란 걸 그때의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IT 및 보안분야에서 꽤 일했다는 나조차도 위치정보컨설팅을 하면서 비로소 접하게 된 위치정보법이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보안업계 사람들도 잘 모르던 법. 대형통신사 직원들조차 관련된 일부 직원들만 존재를 알고 있는 법. 위치정보법은 그런 법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IT서비스로 개발하기 위한 다양한 조건과 요구사항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으며, 하물며 그것이 소규모의 작은 스타트업이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제와 돌이켜보면 많은 컨설팅 경험 중에 가장 창피한 경험은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을 컨설팅했을 때이다. 예산도 부족하고 사람도 부족한 작은 기업에게 있어 컨설팅은 아주 큰 투자이자 모험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라는 자부심으로만 꽉 차 있고 경영이나 재무 같은 분야에 대해서는 인식도 경험도 부족했던 아직 철없던 컨설턴트는 미처 그것을 고려하지 못했던 듯하다. 법과 규정이라는 원칙만을 내세우며 비용 투자나 인력 확충을 무책임하게도 주요 과제로 휙휙 던져대던 그때의 나. 그리고 그 앞에서 난감해하고 때로는 상황을 설명하며 하소연하고 때로는 화를 내시던 그분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IT기업과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다소 케케묵은 주장들은 항시 나오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라 이제는 좀 식상하기까지 한 수준이다. 하지만 꿈과 희망을 품고 창업한 스타트업들, 그 창업자들에게 정보보안 관련 수많은 법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본다. 그 법들이 창업자들의 꿈과 희망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역할일지 아니면 배려 없는 어려운 요구사항들로 인해 꿈을 꺾거나 성장의 장애와 걸림돌이 되는 역할일지.


  IT기업 창업을 꿈꾸는 창업자라면 보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IT기업이 아니라도 IT기술을 이용하는 창업이라면 역시 보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자원이 부족하고 해야 할 것도 많은 창업자들에게 보안은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섣불리 투자하기 어려운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이는 아직 안정된 규모까지 성장하기 못한 중소기업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하는 난제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관련 법은 계속 조항이 추가되고 강화되고 까다로워지고 있으며 처벌과 벌금 규모는 증가하고 있다.


  창업자들이 보안을 신경 쓰지 않고 안심하고 창업할 수 있는 방법, 그들이 성장해 나감에 있어 보안으로 인해 발목을 잡히지 않도록 하는 방법, 좀 더 쉽고 용이하면서 안전한 보안의 사용법, 이제 나와 여러분과 우리 사회 모두가 고민해야 할 숙제다.


  더불어 창업자분들의 꿈과 희망을 응원하고 지원하고 함께 고민해주지 못했던 부족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며 늦게나마 그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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