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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빛 북프랜 Nov 16. 2020

호캉스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

불합리함을 견딘 값

코로나 19로 인해 친구들과의 올해 모임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 덕분에 편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했던 일상의 즐거움이었는지 알게 되었고,

이 계모임 총무님의 통장이 두둑이 살쪘다.

코로나가 완화되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모임 날을 잡았고,

그동안 모아놓고 쓰지 못한 회비를 플렉스 해보자고 다짐했다.


고급 호텔 중에서도 큰 방을 예약했고, 돈 생각하지 않는 1박 2일을 보내보기로 했다.

호텔에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체크인하자마자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 다들 진짜 우리에게 너무 친절하다. 직원 평가 카드 잘 써줘야겠어"

" 아 이렇게 대접받아본 게 언젠지 모르겠다. 돈이 좋긴 좋구나."

한없이 을이던 우리는 돈 쓸 때만큼은 갑이 된듯한 느낌에 호텔 직원들의 평가까지 신경 써준다.


우와우와를 외치며 방을 구경하다가 소파에 뒹굴거리며 얼마 지나지 않아

"근데 너무 추운 거 아니야? 미세먼지 때문에 남산이 보이지도 않아. 소파가 그리 푹신하진 않은데?"

" 아 얼마짜리 방인데 추워?  "

언제나 그렇듯이 행복에서 불만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저녁시간이 되어 호텔 내 식당에서 단품을 시킬까 하다가

이런 곳에서는 코스를 먹어야 되지 않겠냐며 디너 스페셜 코스를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먹고,

그래도 투숙객 할인이 된다며 그래도 비싼 가격을 합리화하며 나왔다.


룸으로 돌아와 우리가 평소에 겪는 갑질과 꼰대들의 에피소드를 풀어냈다.

"나는 대표님이 아침에 매일 사과를 깎아줘야 하고, 청약도 대신 넣어달라고 시켜.
 엄마가 나 이럴라고 4년제 대학 졸업시켰냐고 그래. "

"어머 그런 공공기관에서 그런 사적인 업무를 시켜도 문제가 안된단 말이야?"

"어.. 처음에는 자존감이 떨어지고,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싶었는 데 점점 그냥 이게 나의 일이다 싶더라고"

한 친구의 고백에 이어 또 다른 경찰인 친구도 여자 경찰이 임신하면 어떤 대우를 받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 걱정을 했다.

그렇게 돌아가며 각자가 감당해내고 있는 불합리들에 대해 쏟아냈다.

그 위계와 조직생활에서 불합리함에 대해 싸울 수 도 없는 을인 우리는 

불합리함을 견디고 순응하는 과정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 대표의 자리에 가서 변화시킬 수나 있을까? '

평범한 직원으로 시작한 우리는 그 자리에 가지 못하고 퇴직을 하게 될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고
빗 속에서 춤추는 방법을 배우는 게
조직생활에서 월급을 받고 살아가야 하는 직장인의 자세일까?

아무리 최고급 호텔에 모여 이야기를 해도 그 대화의 콘텐츠는 을들의 울분이었다.

우리는 조직의 불합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그 뒷감당을 하기에는 월급을 포기할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그 불합리함을 참아낸 값으로 주말이나 취미를 더 즐기자는 조언과 위로밖에 해줄 수 것이 없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체크아웃행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프러포즈를 성공리에 마친듯한 행복한 커플의 모습,

너무 알찬 1박 2일을 보냈다며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라는 여자 일행들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그래, 일생을 이렇게 살 순 없어도 하루라도 이렇게 보내려고 돈 버는 거지' 하는 마음으로, 호텔 문을 나섰다.


체크아웃 후 중국집에 둘러앉아 게살수프를 떠먹으며 우린,

" 난 사실 어제 먹은 코스요리보다 뜨끈한 이게 더 잘 맞아 "라며 현실 자각을 한다.


그래, 우린 다시 현실이다.

우리 각자 위치에서 불합리를 견디며 돈 많이 벌어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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