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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빛 북프랜 Dec 01. 2020

발톱 깎아주는 남자

내가 결혼 전에 하던 일 중

결혼 후 하지 않게 된 일이 있다.


그것은 내 발톱을 깎는 일이다.


어느 날 자연스럽게

소파 아래 앉아 내 발톱을 깎고 있는 남편을 보며

문득 왜 이 일이 남편의 임무가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남편은 말하기에는 영 소질이 없다.

"회사에서 재밌는 일 없었어? "

" 응, 없지."

" 오늘 점심 먹으면서 아무 이야기도 안 했다고? 진짜 한 번도 웃긴 일이 없었다고?"

" 응. 늘 똑같지."


한 시간 가량의 점심시간 동안 동료들과 밥 먹으면서 아무 이야기도 안 하나?

왜 매일 에피소드가 없지?

내 친구는 남자 친구랑 매일 두 시간씩 통화하고 잔다는 데 말이 없는 그가 야속했다.


조잘조잘 나의 회사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그에게 하고 나면,

침묵이 이어지다 한다는 소리가

" 음. 회사 그만두라고 말해주면 되는 거야?"

라는 대답으로 날 속 터지게 하는 남자다. 


문득  방바닥에 주저앉아 묵묵히

나름대로의 주기로 발톱을 깎아주고 있는 남편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찡해졌다.


그는 그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데,

나의 방식만을 표현이라고 여긴 것은 아닐까.


내 몸을 구부려 발톱 깎는 일이

어쩐지 자세가 쉽지 않은 데,

(살 때문은 아닐 거야)


그저 자신의 발인 양 발톱을 깎아주고,

아무렇지 않게 만지며 잘 깎았는지

이리저리 모양을 살펴보고는

무심한 듯 수면양말을 신긴 후

바닥에서 일어서는 그를 보며,

그는 그의 방식으로 꾸준히 표현하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유려한 말솜씨를 갖춘 초코 남편은 포기하고,

일상에서 내가 하기 불편한 무언가를 찾아

대신 꾸준히 해주는 행동으로 그의 마음을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그런 그의 행동과 마음이 와 닿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인생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나에게

'태어난 김에 산다'는 말도 모르냐는

그의 무심한 말투에

'우린 너무 안 맞아'라고 생각하던 날들도 있었다.


그런 내가 지금 그의 표현방식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그가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이제 신혼 꼬꼬마 시절이 지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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