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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빛 북프랜 Mar 16. 2021

아직 생기지도 않은 너에게

난임 극복기

매달 배란일을 계산해

2주 동안 뜨거운 찜질도 피하고, 카페인도 줄여

무심코 맥주에 손이 가다가도 달력을 보고 탄산수로 대신하곤 하지


그렇게 가지 않는 2주를 보내고

매일 초조하게 화장실로 향하고는 했지

아 아직 안 나온 걸 거야 이틀 뒤에 다시 해보고 또 실망하곤 하지


그렇게 몇 달을 반복하니 이제 실망하는 일에도 지치고 정신 승리해

우린 아직 부모 준비가 되지 않은 거라고

우리 둘의 인생이 아직 더 즐길 것들이 많고, 돈도 더 벌어야 하고 하며

조급하지 않은 척을 해봐


우리 둘이 사랑할 시간이 아직 더 필요한 거라고

아빠가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너에게 나누어줄 사랑이 부족한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갈팡질팡해


이제 지금 가지면 언제나 오지 계산하는 일을 그만뒀어

매번 봄이나 가을에 아기가 태어나면 좋겠다느니

딸이면 좋겠다니, 아직 있지도 않은 너에게 지금 생기면 '효녀/효자'라고 태명을 지어야겠다며

김칫국 마시는 일도 그만하려고 해


한의원을 다니고 자궁 찜질을 하며

내 몸이 차서라고 원망을 하며 따뜻한 차를 마시고, 아기맞이 쑥 팬티를 입고, 쑥 좌훈을 하고

아빠와 영양제를 드링킹 한 지가 반년.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아서 아이가 안 생기는 거라고

회사를 그만두고 또 기다리지

내 몸이 더 건강해지길, 튼튼한 엄마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지난달에 조금 마신 맥주 때문은 아니겠지, 아침에 정신 차리고 일해야 한다며 마신 라테 때문은 아니겠지

하며 마음 졸이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해놓고는 또 생각해

이렇게 하고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나 직업마저 둘 다 잃는 건 아닐까

임신에 더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사람이 되진 않을까 걱정을 해


임신하고 육아휴직받고 돌아갈 곳이 있는 워킹맘이 되는 일이 이렇게 힘든 거였다는 사실에 좌절했고

이렇게 내 것을 내려놓아도, 경제적 풍족과는 더 멀어지고

내가 공부한 게 아깝다는 마음도 접어가며

지금까지 내 인생 노력의 총집합체인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오로지 너만 기다리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사실은 회사 다니기 싫어서 임신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 다시 한번 묻곤 해

난 진정 부모의 준비가 된 걸까.

내 한 몸 회사 다니며 먹여 살리는 것도 힘들어하던 내가 부모를 욕심내는 건 책임지지 못할 생각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또 다른 고민들이 생겨나


마음 편하게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괜히 짜증이 났어

조급하지 말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화를 내기도 했지

마음을 놓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내가 엄마 될 준비가 되지 않아서일까? 




--- 2020년 겨울, 작가의 서랍에 숨겨뒀었던 마음을 이제야 꺼내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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