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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빛 북프랜 Dec 04. 2020

'동상이몽' 전진 부부를 보다 울었다.

나 괜찮아진 걸까?

지난달부터 몸과 마음을 정비하는 취지의

"의무 없는 한 달 보내기"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평온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래도 되나? 불안한 마음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이다."
"좀 쉬려고요, 그동안 힘들었거든요"...

좋아하는 책을 맘껏 읽으며 나에게 위안을 주는 문구들 되뇌며 스스로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내 몸도 마음도 균형을 잡아가는 듯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만 가득 채우는 하루를 누리면서.

 

임신이든 뭐든 내 몸이 제일이지,

내가 건강한 게 최고지라고 생각하며

한 달 한 달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도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나만 생각하는 날들 보내며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동상이몽 프로에서

전진-이서 부부를 보기 전까지는.


류 이서가 속이 좋지 않다고 하자,

기대하는 전진의 표정.

이서는 임신 아닐 거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떨리는 모습이었다.

'내가 임신은 아닐까? 아닐 거야'

스스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 깊은 곳에서는 '혹시?'라는 생각에

널뛰었던 내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숨길 수없는 전진의 표정과 몸짓까지도.

설렌 모습으로 약국에 다녀오는 모습,

테스트를 마친 이서가 화장실에서 나와 건넨

테스트기의 비임신을 확인하던

전진의 표정까지 생생히 박혔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나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왜 갑자기 그 장면들이 그렇게 서러웠을까?

나 분명 이제 괜찮았었는데. 


그러다 몇 달 전 어느 날이 떠올랐다.

전진 표정을 보며 그렇게 서글펐던 이유.


임신에 대한 기대와 실망의 과정을  

남편과 같이 겪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이 카페에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러 간 사이에 나 혼자 몰래 임테기에 손을 댔고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확인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결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남편이 씩씩거리며 돌아왔다.

남편은 커피 뚜껑이 잘 안 닫혀서

내가 주문한 라테를 차에서 다 쏟았다고 

나는 왜 내 커피가 이거밖에 없냐고

뚜껑도 제대로 못 닫냐고

떨리는 마음을 짜증으로 풀어내며 화장실에서 테스트기를 쳐다봤다.


어? 그런데 난생처음 2줄이었다.

화장실에 얼떨떨하며 테스트기를 이리저리 불빛에 비추어보았다.

남편에게 이거 지금 줄 보이냐고, 내 눈이 이상해진 거냐고 다급히 물었다.

달려온 남편은 곧장 얼굴에 짜증이 걷힌다.

차에 쏟은 커피가 하필 아메리카노도 아니고

라테여서 냄새가 더 날 거라며 중얼중얼거리던 남편은 커피 뚜껑을 잘 닫지 않고 준 종업원도

어느새 다 잊어버린 듯

" 오,  이제 커피 마시면 안돼서 쏟아진 거였나 보네~"

갑자기 말투도 표정도 세상 부드러워진다. 


이렇게 갑자기 사람 말투와 표정이 바뀔 수 있다니

아 이래서 임신하나 보다 싶을 지경.

표정 하나로 임신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가슴 두근거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날 다시 해보아도 또 다음날 다시 해보아도 빼박 1줄이었다.

망할 테스 티기 오류였나 보다.

그렇게 소동은 끝났다. (라테만 마시지 못하고)


하지만, 그날의 남편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기쁨이 얼굴을 뚫고 나오는 듯한 표정'이란 게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날. 


전진의 표정을 보면서

나와 똑같이 기대와 실망까지 다 느끼면서도

애써 숨기려는 듯한 남편의 표정이 오버랩되어 떠올랐던 것이다.


살아가는 과정과 모습이 연예인 부부와도 크게 다를 것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때의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던 기억이 소환되었다.

 

그 당시에는 내색하고 싶지 않아 참았던 눈물이 이제 와서 나온 거 같았다.

마치 그들의 일에 슬픈 것처럼 타자화하며.


그리고 생각한다.

평생 한 달에 한번 월경은
여자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너무 빨리 주기가 돌아오는 거 아니냐고 몸을 원망하던 내가
임신 준비를 한 뒤로는 한 달 주기가 이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다.
결과를 기다리는 2주는 참 길게만 느껴졌다.
참 이상하다.
'벌써 12월이네' 일 년이 이렇게 빨리 가서
또 한 살이 먹었구나 할 때는
시간이 야속하게도 빠른데
플랭크 운동만 하면 1분이 그렇게 길 수가 없다.
"올 한해가 벌써 마지막달이라니,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느껴지면
지금 당장 플랭크를 해보자.
1년은 짧은 데, 1분은 길다."  

시간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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