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라 Aug 08. 2022

전달하지 못한 편지

구속된 의뢰인과 포항구치소 접견


형사사건에서 판결 선고일에 변호사가 참석하지는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판결 선고 시간에 맞추어 법정에 간 사건이 있었다.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사건.

운전 중 사람을 치여 사망하게 한 사건이었는데 음주도 뺑소니도 아니었지만 과속 정도가 컸고 무엇보다 피해자의 유족과 합의하지 못한 것이 가장 컸다. 형사 합의하지 못한 것을 넘어서 유족들은 매 재판마다 출석해 울음을 터뜨렸고, 판결 선고일에도 법정 가장 앞자리에 앉아 소리 높여 울고 있었다. 판사도 사람인지라 그러한 피해자측의 적극적 참여와 엄벌탄원은 사실 판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유족들을 모습을 보아온지라 실형을 예감했고, 그렇기에 판결선고를 함께 듣기 위해 갔다. 법정에 가는 길 하염없이 무겁던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의뢰인이 법정구속될 것을 알고 판결선고를 들으러 가는 변호인의 발걸음은 무겁다.


전과도 전혀 없던 젊은이는 그렇게 법정구속되었다. 

실형이 선고되면 대부분 그 자리에서 즉시 구속되는데 그것을 법정구속이라고 한다. 사안에 따라서는 실형이 선고되는데도 불구속 상태에서 항소해서 다투어 보라는 취지로 법정구속이 되지 않기도 한다. 사기죄로 기소된 사람이 있다고 치자. 사기친 액수와 전과 등 정황으로 보았을 때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지만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라거나 불구속 상태에서 충분히 합의될 것 같은 사정이 있어 보인다면 판사는 일단 1심 판결로 징역 1년을 선고하되 법정구속을 하지 않기도 한다. 이 사람이 항소해서 항소심에서도 실형이 그대로 선고되어 확정된다면 그 때 구속될 것이다. 만약 1심 판사의 이러한 선처를 알지 못한 채 항소하지 않는다면 일주일의  항소기간이 지나 판결이 확정된 일주일 후에 구속될 것이다. (형사판결의 항소기간은 1주일이다)


어쨌든 나의 이 의뢰인에겐 그런 선처는 없었고, 판결 선고 즉시 구속되었다.

판사가 판결문을 다 읽자 법정에 대기하고 있던 교도관들이 그의 팔을 잡고 그를 데려갔다.

생각보다 높은 형에 그는 울음을 터뜨렸고, 다방면으로 피해자 유족들과 접촉하며 어떻게든 합의해보려 노력했던 나도 무거운 마음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들은 완고했고, 죽은 사람을 진정 위하고 추모한다면 합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가해자를 최고형으로 살게 하는 것이 망인을 위한 진정한 추모라고 생각하는 듯 매 재판에 가장 앞자리에서 울던 유족들이었기에 얼마를 주더라도 합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며칠 뒤 구치소 접견을 갔다.

의뢰인과 항소에 대해 상의하고 밖에서 가족들이 전세집과 회사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들에 사인도 받았다. 마지막으로 접견실에서 인사를 하고 일어나려던 내게 의뢰인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 변호사님...."

"네..?"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제가 쪽지를 써드리면 여자친구한테 전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밖에서 너무 걱정하고 있을 거 같아서..."


흔쾌히 승낙한 내가 재판 기록 중 깨끗한 종이 하나를 찾아 작게 잘라주자, 그는 부끄러운듯, 조금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짧은, 하지만 사랑한다는 마음이 가득한 편지를 써 주었다. 여자친구란 사람은 그가 구속된 후 내게도 연락을 해와 이것저것 접견을 가서 알아와달라는 것들이 있던 여성이었다. 


변접(변호인 접견)을 마치고 구치소를 나왔다.

입장할 때 맡겨야 하는 변호사 신분증과 휴대폰을 돌려 받고 카카오톡 앱을 열어 의뢰인이 써 준 메모를 사진 찍어 보내주려고, 채팅 목록 중에 의뢰인의 여자친구를 찾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남자친구 구속 이후 카카오톡으로도 내게 연락을 해와 이것저것 묻던 사람이어서 카카오톡 채팅방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난 메모지에 쓴 의뢰인의 편지를 보내주지 못했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엔 다른 남성과 다정하게 찍은 커플샷이 올라와 있었다.

나의 수임 범위는 1심까지였고,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의뢰인이 괴로워할 것 같아 이 사실을 굳이 알리진 않았다.

접견실에서 여자친구가 보고 싶어 울먹이며 편지를 쓰던 그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마음이 무거워졌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증인신문하길 잘했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