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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라 Aug 06. 2023

[나의 두 번째 고양이] 붙박이장을 뜯어내다

숨바꼭질의 달인 김찬

길 고양이 시절의 찬이


설레는 마음 반, 긴장되는 마음 반으로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서재방에 있는 찬이는 잘 있을까, 밥은 먹었을까, 배변도 했을까.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재방 문을 열었는데 찬이가 없었다.

고양이들은 왜 이렇게 잘 숨는 걸까 생각하며 구석구석 샅샅이 뒤졌다.

책장 틈을 보고, 닫혀 있던 서랍 문도 열어보고, 온갖 짓을 다 해보았으나 분명 찬이는 없었다.

무더운 날씨에 온몸이 땀으로 젖을 정도로 찾아 헤맸지만 찬이는 없었다.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다.

'설마 나간 거야?'

길고양이 출신인 찬이는 임시보호처에서도 방묘창을 뛰어넘어 나가 방충망 사이에서 바깥 구경을 하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입양을 하기로 하고  제일 걱정되었던 것도 찬이가 집을 나가버리면 어쩌나였고, 그래서 찬이가 지낼 방도 방충망이 제일 튼튼한 서재방으로 골랐던 것인데...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창문의 방충망은 찢어진 흔적도 없고, 창 구조상 고양이가 나갈 수 있을 정도의 틈도 없다.

'도대체 뭐지? 어떻게 된 거지?' 생각하며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데 문득 서재방 벽 한 면을 채우고 있는 붙박이장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하는 마음에 의자 위에 올라가 붙박이장 측면을 보니 장 꼭대기 옆면에 천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워낙 높은 곳이라 의자도 높이가 부족해 의자를 딛고 탁자에까지 올라가 구멍 속을 보니 붙박이장 천장 저 끝에 조그만 눈 두 개가 반짝거린다!


붙박이장 천장 위로 숨어버린 찬이



이 집에 이사 온 지 3년이 되었지만 붙박이장 옆에 구멍이 있을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밤새 밥도 먹고 배변도 하고 신나게 돌아다니던 찬이가 저 개구멍, 아니 냥구멍을 발견하고 높이뛰기 선수답게 쌓여있는 짐들을 딛고 쏙 들어가 버린 것.

막상 들어가 보니 거기만큼 퀴퀴하고 컴컴한, 아주 고양이 취향에 딱인 장소도 없었으리라.


찬이를 찾아 한숨을 돌린 것도 잠시 걱정이 휩싸였다.

찬이는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온 지 하루 밖에 안된 데다 안 그래도 사람을 무서워해 임시보호집에서도 낮엔 내내 숨어있기만 했다는 아이가 사람이 있을 때 나올 리가 없다.

신뢰가 쌓인 사람도 없으니 유인할 방법도 없다.


출근을 했지만 머리가 복잡했다.

결국 인터넷 검색을 해 인테리어 업체를 수소문했고, 오늘 당장 와서 붙박이장 천장 부분을 뜯어내 주겠다는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을 섭외할 수 있었다.

그 방법 밖엔 없었다.

접종이 하나도 안 되어 있는 아이라, 내일 당장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을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억지로라도 꺼내는 수 밖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찬이가 온 지 만 하루도 안 되어 우린 장을 뜯어냈다.

뜯는 동안에도 요란한 철거 소리에  장 위에서 요리저리 피해 다니던 찬이는 마지막 조각을 뜯어낸 후 눈이 마주친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에게 크게 하악질을 남겼다고 한다.


앞 : 뜯어낸 후 붙박이 장 / 뒤 : 뜯어내기 전 붙박이 장



온 지 만 20시간 만에 철거 공사를 하게 만든 너. 

장 위 공간은 이제 니 캣타워로 사용해라. 

대신 조만간 병원은 꼭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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