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실에 집합했다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인사를 안 해서
했어도 제대로 안 해서
인사에는 절차와 예의라는 게 있다
그걸 알려주는게 선배이니까
너네 인사 안하고 그냥 지나치더라?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야지 지금 눈 똑바로 뜨고 뭐하는 거야?
나는 일 학년 당신들은 이 학년이어서
입 꾹 닫고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뒷목이 아파 죽겠는데
죽어도 이게 맞나
어쩌겠어 일과 이는 천지차이
그게 질서이니까
당신은 새카만 정수리들을 보고 말한다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알아?
목소리가 시꺼먼 바닥에서 흘러나온다
바닥에 끈덕지게 늘어붙은 망령의 정체
십팔년 된 껌보다도 오랜 전통을 지닌
만우절이란다 만우절, 만우절 그러니까 모두 거짓말이고 농담이고 장난이었어 와.하.하.하.
아, 거짓말! 거짓말이면 웃긴 건가 아니 거짓말이 뭔데? 뭐가 거짓말인데? 웃으면 다야? 아니
이게 웃겨? 뭐가 웃긴데? 진짜 장난하나 장난해?
나는 일 학년 당신들은 이 학년이어서
눈을 내리깔고 웃는 수밖에
이런 식으로
이딴 식으로
웃음을 물려주는 것이 만우절의 질서
작년의 후배가 올해의 선배가 되는
그게 만우절이라고
알려준 거
진심으로
진심으로
역겹다
아무리 무리하게 웃어도 안 웃긴 게 사실이야
웃음이 거짓일 뿐
웃는다고 웃겨지진 않아
그게 만우절이라도
웃음에도 절차와 예의라는 게 있다
그걸 너도 알았을 걸
만우절이 되면 자꾸만 떠올라 나를 괴롭히는 기억이 있다. 이 일 때문에 결정적으로, 만우절은 내 인생에서 ‘극혐’인 날이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당시 담임선생님께 그 일에 관해 고발하듯, 얘기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선생님께 말했다는 사실이 선배들에게 알려지는 걸 가장 두려워했다. 선생님은 선배들이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으로, 전체적인 훈육을 하는 것으로 잘 마무리해 주셨지만 그럼에도 선배들이 알아내고야 말았을까 봐 나는 내내 두려웠다. 그리고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그러니까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면서 뒤에서 ‘고자질’이나 하는 정도의 사람밖에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혐오스러웠다.
다행히도 서서히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폭력을 당한 아이가 신뢰할 수 있는 어른에게 말했고, 그 어른은 잘 해결해 주었으니 그것은 청소년기의 나로서는 나름대로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완성된 시라 할 수 없지만, 만우절에 굳이 이 시를 써놓고 보니 게시하고 싶어졌다.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지는 폭력들이 아직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참을 수가 없었다.
폭력을 저지르고, 농담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냥 폭력보다 더 나쁘다.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우절은 폭력을 거짓말로 무마하는 날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는 작은 위로가 용기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