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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Apr 22. 2024

책방을 접는다는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다.

  독립서점을 창업하는 이야기와 운영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아주 많다. 그에 반해 폐업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폐업’이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일 것이다. 이 단어의 느낌이 왜 이리 좋지 않은가, 궁금해져서 사전을 찾아보니 폐업의 ‘폐’는 ‘버리다, 못쓰게 되다, 그치다, 멈추다, 무너지다, 쇠퇴하다 ‘의 뜻을 가진 한자라고 나온다. 좀 더 건조한 단어는 없는 걸까? 그냥 그만하는 걸 수도 있는데, 폐업이라고 하면 그 단어가 함축하는 뜻 때문인지 ’ 망한다 ‘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다.


“결국 망했구나.”

  문 닫게 된 서점 앞을 지나가며 누군가가 하게 될 말이 벌써부터 가슴 아팠다.

“그래, 요즘 시대에 누가 책을 읽는다고. 사더라도 인터넷에서 사지. “

  듣지도 않은 말을 이미 들은 것 같았다. 그 말에 나는 벌써부터 변명을 늘어놓고 싶어졌다.

  ”문은 닫았지만 망한 건 아니에요!”

  처절하게 외치고 싶었지만, 문을 닫은 서점 앞에서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 망한 건 아닌지. 폐업이라는 사실과 망했다는 사실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문을 닫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잘 안 팔리는 판국에, 시간부족에 시달려 숏폼 콘텐츠만 보고 웬만한 영상은 2배속으로, 드라마나 영화는 요약본으로 보는 현대인들에게 이 이야기는 필요한 이야기일까. 그것도 책으로. 다들 표지만 보고 손대기조차 꺼려하는 이야기는 아닐까, 조심스러웠지만 나에게 이 이야기는 꼭 써야 하는 이야기였다. 내가 그토록 절실히 쓰고 싶어도, 볼 사람이 없다면 결국 ‘수요 없는 공급’이라는 출판계의 고질적인 죄를 또 한 번 쌓게 되는 것이지만, 수요가 적을지라도 분명히 이 이야기를 듣고 싶은 이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수단은 결국 책이었다. 내 이야기를 온전히 담고, 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가닿는 방법은 책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아무리 적어도 눈여겨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속도를 맞추어 다 꺼내어 보여주는 매체. 오랜 시간 외면을 받다가도 서점 한 구석에서 어떤 한 사람의 눈에 발견되기를 언제까지고 지치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기다려주는 매체, 그것이 책이어서다. 이는 근본적으로 책이 질리지 않는 이유이며, 책을 사는 사람이 그렇게 점점 적어져도, 수지타산이 안 맞는 장사라는 걸 누구나가 다 알아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책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책이 팔리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을 누구보다도 뼈져리게 알 수밖에 없는, 이제 막 폐업한 책방의 주인이 굳이 책을 내겠다고 하는 이유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반드시 가닿을 것이다.


  폐업을 스무날 남짓 앞둔 어느 날, 자려고 누웠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내가 블로그에 썼던 책방의 운영 기록들을 쭉 살펴보았다. 2022년 초부터 여러 개월동안 책방 개업을 준비하며 쓴 기록이 있었고, 2022년 6월 개업 이후의 일기, 그 후에 이루어진 여러 모임 후기, 북토크 행사 후기, 연말마다 쓴 결산 글들이 있었다. 열심히도 했고, 열심히도 썼다. 즐거워 보였고, 다시 읽고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즐거워서 결국에는 아쉬워졌다. 즐겁고 뿌듯한 순간만 있지는 않았어도, 내가 기록한 건 주로 그런 순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든 순간들이 ‘폐업’이라는 두 글자로 무의미해질 수는 없었다. 폐업은 할 때 하더라도, 다른 의미를 기필코 건져 올려야만 했다. 그 의미에 관해 있는 힘껏 알리고, 폐업은 자랑이 아니어도 이것만은 자랑이라고 한 번쯤 내세워도 봄으로써, 나의 폐업이 책방을 하려고 하는 다른 이들에게 혹은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손님들에게 안타까움이나 좌절로 남지 않았으면 했다. 책 팔아서 돈은 못 벌어도, 꿈은 이루었고, 돈을 못 벌었다고, 성공은 아니라고해서 하찮게 여겨질 것들은 아니어서.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아무리 장황하게 해도 모자랄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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