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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Nov 24. 2023

초면에 생일축하해달라고 하기

  내가 운영하고 있는 독립서점에서 ‘내’ 생일 기념 이벤트를 2주 동안 진행했다. 이벤트 내용은 책을 구매하시는 분들이 나에게 생일 축하 멘트를 해주시면 10%를 할인해 드리는 것이었다. 책 판매에 있어서 정가 정책을 고수하던 나에게 10% 할인은 나름대로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10%를 할인하든 하지 않든 책방에서 살 사람은 사고, 아닌 사람은 인터넷에서 사거나 그도 아니면 책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도서정가제 정책상 도서는 최대 10%까지 할인 및 5% 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러모로 부대비용이 드는 오프라인 서점은 온라인 서점과 가격 경쟁을 할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운영상의 이유로 상시 할인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걸 우선 밝혀둔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순전히 나의 재미와 기분을 위해서였다. 결과는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SNS에 안내했던 생일축하 이벤트 이미지 


  책방에서 한동안 얼굴을 볼 수 없었던 분들도 덕분에 계기가 되어 오래간만에 보게 되었으며, 늘 모임에 오셨던 분들도 오신 김에 나의 날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 기쁘게도 책을 한 권씩 사주셨다. 선물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책 구매 해주시는 것이 저에게 선물!’이라고 책방 SNS에 썼었다) 감사하게도 쿠키, 빵, 귤을 선물로 사 오시는 분들도 계셨다. 따뜻하게 포옹을 해주신 분도 계셨다. 어린아이와 함께 방문한 손님들은 아이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를 들을 수 있도록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생일 축하를 해주고 싶어서 굳이 책방을 왔다는 손님도,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을 특별히 우리 책방을 통해 주문해 준 손님도 계셨다. 모든 분들께 책을 건네드리며 이런 것이 바로 책방 주인의 특권 아닐까, 잠시 생각해보곤 했다. 


  그리고 약간의 당황스러운 사태(?)도 몇 번 벌어지곤 했는데 그건 바로, 초면에 생일 축하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책방 SNS를 보고 오신 분들은 당연하게도 먼저 생일축하 말씀을 해주시는 편이었는데, 종종 이벤트와 상관없이 들어오신 분들께는 내가 설명을 드려야 했다. 그저 책을 사려고 했을 뿐인데, 갑자기 초면인 사람의 생일 축하를 해야 하는 그분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나도 마찬가지로 초면인 분께 생일 축하를 ‘요구’하는 말을 하고 있으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으나 막상 말을 꺼내고 나면 생각보다 모두들 기분 좋게, 흔쾌히 생일 축하한다고 웃으면서 말씀해 주셨다. 물론 대략 아래와 같은 대화가 필요했다.


  “저희 책방에서 지금 2주 동안 제 생일 축하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요, 여기 쓰여있는 것처럼(괜히 안내문을 가리키며) 저에게 생일축하 멘트… 간단히… 해주시면 10% 할인해드리고 있어요.”

 보통 초면인 손님들은 한 번에 받아들이지 못하시고 다시 한번 물어보신다.

 “예? 아… 어떻게 하면 돼요?”

 “저에게 그냥 ‘생일축하한다’ 고 말씀해주시면 돼요.”

 나는 조금 긴장하지만, 이 말을 들은 초면인 손님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에서 이내 재미나다, 흥미롭다 혹은 신기하다는 웃음기 띤 표정으로 변하면서 말씀해 주신다. 어떤 분들은 수줍고 어떤 분들은 활기차다.

 “생일 축하드려요!”

 어떤 손님의 경우에는, 악수를 하시면서 힘차게 외쳐주시기도 했다.


  나는 단골손님과 초면 손님들께 책을 쥐어드리며, 이중의 의미를 담아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하나의 의미는 생일 축하해 주셔서 감사하고, 또 하나의 의미는 책을 구매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 그 두 가지 의미를 한 번에 담은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있어 기쁜 나날들이었다. 또한 축하를 받기 위해서 나 역시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기뻤다. 


  한 단골손님은 이런 이벤트는 어떻게 생각하시게 된 거냐고 물어보셨다. 사실, 몇 년 전에 ‘ㅅ’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진행했던 이벤트가 생각나서 해본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 기간 동안 쿠폰을 내밀면서 주문을 받는 직원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면 1+1 음료를 주는 행사가 있었다. 극도로 내향적인 나에게는 그 마디를 직원에게 건네는 순간이 떨리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으나, 어쨌든 그 커피숍에서 내가 경험했던 사건 중 가장 인상 깊은 사건이 되었다. 직원은 친절하게 웃으면서, 능숙하게 ‘고객님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하고 외쳤다. 그 분과 나도 초면이었지만,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주문을 하고 주문을 받는 대신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는다는 건 그곳의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는 경험이었다. 무표정하게 있다가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 우리가 그 순간 밝게 지었던 표정처럼. 그때는 손님으로서 딱 한 번 경험했었지만, 2주에 걸쳐 책방에서 책을 구매하는 모두에게 축하 인사를 받는 ‘서점주’로서의 경험은 더욱 좋았다. 이 기간 동안 우리 책방에서 책을 구매해주셨던 손님들에게도 축하 인사를 건냈던 그 순간이 특별하게 기억되길 바라는 욕심 섞인 마음이 든다.


  친하게 지내는 근처 꽃집 사장님은 우리 책방의 생일 이벤트를 보고 본인도 다음 달에 생일이 있는데, 비슷하게 해보고 싶다고 얘기하셨다. 꽃집 사장님의 이벤트는 어떤 이벤트가 될까, 나도 덩달아 기대가 된다. 꽃집 사장님의 이벤트를 보고 또 옆 카페 사장님도 생일 이벤트를 열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 동네만의 생일절 문화가 생기면 좋겠다. 더 욕심을 내보자면 이 글을 읽은 모두(그리 많진 않더라도)가 스스로의 생일을 더 화려하게, 더 자랑스럽게, 더욱 널리 널리 알리며 챙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렇게 축하하고 감사할 날이 있을 때마다 얼떨결에 이런 일들을 계기로 축하하고, 감사하다고 서로 온기를 나누면 금방 따스함이 넘치는 세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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