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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Mar 31. 2023

쨍한 햇살이 비추는 날, 햇살이 들지 않는 서점에서

건물 밖을 나오자마자 쨍한 햇빛이 반긴다. 도로와 공원의 벚나무와 개나리도 활짝 꽃을 피워서 그야말로 화사한 봄의 한가운데에 와있는 느낌이다. 몇 주전까지만 해도 바깥에 주차해 둔 차를 탈 때, 서늘한 느낌이 들어 핸들열선과 열선시트를 켜곤 했는데 어느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히터를 틀지 않는 대신 유리창을 내린다. 차갑지 않은, 적당히 시원한 공기가 차 안을 휩쓸고 가지만 그러는 동안 도로의 소음도 함께 들어와서 시끄럽다. 그렇다고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기엔 그리 덥지 않은 날씨다. 에어컨을 켜지 않은 채 창문을 닫고 있자면 또 차 안이 금세 숨을 쉬기 답답할 만큼 후덥지근해진다. 앞유리를 내렸다가 뒷유리를 내렸다가 다시 앞유리를 올리고… 적정한 선을 찾지 못한 채, 뒷유리와 앞유리를 대각선으로 약간씩 내린 뒤, 지하주차장에 다다라서는 약간의 후덥지근함을 참으며 도착한다.


나의 일터, 서점은 지하 1층이어서 바깥이 아무리 쨍쨍해도 해가 들지 않는다. 햇볕에 익은 차 안에 있을 때는 너무 뜨겁다 싶었는데, 가게 안에는 조금의 햇살마저 들어오지 않으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상가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서점으로 걸어올 때까지 차 안에서 몸을 덥혀두었던 햇살의 따뜻한 기운은 금방 휘발되어 버렸다. 차가운 공기에 금방 코끝이 시큰하고 손과 발이 차가워진다. 3월이 끝나가는데, 아직도 수족냉증 때문에 힘들다니 지겹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내가 출근 한 뒤, 조금 후에 온 옆 가게 아동복 사장님과 인사를 나눴다. 아동복 사장님도, 나도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30대 여성이어서 공감하며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상가 월세와 관리비를 내는 날이 다가올 때마다, 손님이 없을 때마다 푸념을 한다. 오늘은 바깥 날씨는 따뜻한데 가게만 들어오면 춥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동복 사장님은 얇은 봄 재킷을 입었다. 나는 아동복 사장님이 춥겠다고 생각하며 말한다.

“저도 어제 바깥 날씨가 따뜻하길래 얇게 입었는데 가게는 춥더라고요…”

그러는 나는 오늘은 조금 두꺼운 외투를 걸쳤다. 두어 시간 뒤, 아동복 사장님이 너무 춥다고 하셔서 내가 애용하는 파쉬 찜질팩에 따뜻한 물을 담아 빌려드렸다. 나는 온풍기가 있어 틀었다 껐다 하며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서점에 손님이 없어도 가끔 이처럼 온기를 서로 나눌 수 있는 옆가게 사장님이 있어 조금은 버틸만하다고 생각했다. 매일 오후 다섯 시 즈음이 되면 아동복 사장님의 여섯 살 난 아들이 우리 가게의 무거운 유리문을 천천히 열며 들어온다. (처음엔 힘겨워보여서 문 여는 것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아이는 씩씩하게 ‘혼자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이가 유치원을 마치고 두 어시간 정도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엄마인 아동복 사장님과 함께 퇴근하는 때다.

“안녕히 가세요”

아이는 ‘가세요’ 라고 해야 할지 ‘계세요’ 라고 할지 헷갈릴 때가 많다. 아이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인사를 즉흥적으로 내뱉는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도 한다. 아이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늘 ‘응~ 잘 가’라고 한다. 속으로는 너무 귀여운데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 지 몰라 아이보다도 내가 더 어색해하는 편이다. 지겨울 법도 한데, 꼬박꼬박 매일 퇴근 인사를 오는 아이가 고맙기도 대견하기도 예쁘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때를 자꾸 은근히 기다리게 된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세탁소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던 나의 어린 시절도 떠오른다. 나도 자영업을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였다. 엄마와 아빠가 언제든 내 눈앞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지만, 언제든 손님이 오면 나보다 손님을 우선해야 했던 자영업자인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컸다. 오롯이, 오랫동안 나에게 관심을 줄 수 없는 부모님 옆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지루하고 심심할 때면 가게 뒤에 있던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거나 옆 가게로 놀러 가곤 했었다. 내가 자주 드나들던 옆 가게들은 철물점과 문구점, 미숫가루 집, 만화책 대여점이었다. 그 여러 가게의 사장님들은 내가 자신들의 가게에서 돈을 쓰지 않고 이것 저것 만지작 거리거나 이리 저리 가게 안을 서성이며 시간을 죽이기만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은 늘 나를 기꺼이 환영해 주셨다. 내가 상가 이웃인 세탁소집 딸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꼭 그렇지 않더라도 어린이에게 어른들은 대체로 친절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 존재만으로도 해사한 햇살 같은 아이를 보며 나는 그저 아이가 가끔 지루할 때 잠깐이라도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어떤 공간을 제공할 수 있어서 좋다.


아이는 밝은 미소를 내게 지어주고, 어딘가로 달려간다. 아동복 사장님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아이는 뛰어서 멀찍이 가다가도 뒤돌아서 되돌아온다. 문득 아이를 바라볼 때는 ‘춥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는 봄날의 햇살처럼 온기를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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